가루지기 <526>쎄려 쥑인대도 몰라
가루지기 <526>쎄려 쥑인대도 몰라
  • 최정주 글,고현정 그림
  • 승인 2013.02.25 14: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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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옹녀의 전성시대<4>

밖에서 아짐씨, 아짐씨, 하고 주모를 찾는 소리가 들렸다. 그것도 아낙의 조심스런 목소리였다. 주모가 얼른 옹녀 년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호랭이도 제 말허면 온다드니, 정사령의 마누래여. 또 그 사내의 행방얼 물으로 왔는갑만.”

작은 소리로 속삭인 주모가 문을 활짝 열었다. 얼굴이 곱상한, 겉으로 보기에는 화냥기가 조금도 보이지 않는 아낙이 아짐씨, 날 좀 살려주씨요, 하고 한숨을 내쉬며 마루끝에 엉덩이를 걸쳤다.

“아, 글씨, 나도 모른당깨 그러네. 병강쇠 총각이 나헌테 어디로 간다고 말얼허고 간 것도 아니고, 내가 귀담아 들어도 그 총각이 팔령재를 넘었는가, 여원재럴 넘었는가, 즈그덜끼리 말허는 술꾼도 없드랑깨. 정사령나리럴 통허면 음전네가 나보담 먼저 알아낼 수 있을 것이구만. 제발 적선에 음전네가 변강쇠 총각얼 찾아가꼬, 나헌테 좀 알려주소. 허면 내가 쌀가마넌 내놈세.”

주모의 말에 음전네가 번들거리는 눈으로 쏘아보았다. 미친기가 번득이는 그 눈빛에 옹녀 년이 어깨를 흠칫 떨었다. 계집이 사내한테 허천이 들리면 눈이 저렇게 변하는 수도 있구나, 싶었다.

“그짓말 허지 마씨요. 나넌 아짐씨가 강쇠 총각얼 만내고 온 줄 다아요?”

“다 알어? 어뜨케?”

주모가 옹녀 년을 돌아보았다.

“멀쩡허던 아짐씨 허리가 아픈 것얼 보면 알 수 있소. 아짐씨 허리럴 그렇게 맹글 수 있는 사내넌 강쇠 총각 백이 없소. 내가 어디 아짐씨럴 한 두 해 보았소? 얼렁 쫌 알켜 주씨요. 강쇠 총각이 있는 곳얼 알켜주면 내가 이걸 드리리다.”

음전네가 허리춤의 주머니에서 작은 금가락지를 꺼내었다.

“아무리 떼럴 써도 소용이 없구만. 내가 음전네헌테 그 보다 두 배는 큰 금가락지럴 줄 것인깨, 알켜주든지.”

주모가 고개를 내저었다.

“참말로 모르요?”

“쎄려 쥑인대도 몰라.”

“낭중에라도 아짐씨가 나럴 ?인 것이 탄로나면 내가 아짐씨의 가심에 칼얼 꽂을라요이. 아짐씨도 쥑이고 나도 죽어뿔라요이.”

음전네가 주먹으로 마루장을 쿵쿵 두드리며 입에 거품을 물었다.

“답답헌 소리 허지 말고, 얼렁 나가서 강쇠 총각이나 찾아 봐. 정사령이 창얼 꽂겄다고 찾아댕긴담서? 서방님이 창얼 꽂기 전에 음전네가 먼첨 찾아 아랫녁얼 달래야제. 안 그러면 죽 쒀서 개 주는 꼴백이 안 된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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