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자리 창출과 창의력
일자리 창출과 창의력
  • 고건
  • 승인 2013.02.21 17:3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생산성을 높이고자 하는 노력은 인류 역사 내내 끊임없이 이어져왔다. 근대에 들어와서는 아담 스미스가 ‘국부론’에서 국가의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분업’의 개념을 주창하였다. 예를들어 한 개의 핀을 만들려면 18개의 공정을 거쳐야 하는데 (철사를 펴고, 자르고, 갈고 ... 최종단계인 핀 포장에 이르기까지) 이 모든 공정을 한사람이 다 작업한다면 하루 핀 20개 정도밖에 못 만든다고 한다. 그런데 각 공정을 한사람씩 맡아 분업화하면, 하루 5만개 10만개까지 생산성이 올라간다고 주장하였다. 분업을 하면 각 사람마다 맡은 일에 전념하여 숙련도를 높일 수 있고, 또 분업은 기계의 도입을 쉽게 해주기 때문이다.

이러한 생산성 제고 노력을 기업에 도입된 한 사례로는 포드자동차가 가장 유명하다. 헨리 포드는 컨베이어 벨트를 통한 분업과 과학적 관리로 다른 회사들이 2,000달러에 자동차를 팔 때 850달러라는 파격적인 가격으로 자동차를 팔기 시작했다. 가격만 싼 것이 아니라 품질도 더 좋았다. 각 공정마다 익숙한 숙련공 덕택이었다. 포드에서 차가 나오기 시작하자 그때까지 세계 자동차 시장의 70%를 점유하던 프랑스의 우위는 순식간에 역전되었다. 

아담 스미스의 예언대로 컨베이어 벨트와 분업은 미국 국부에 크게 기여하게 된다. 즉 2차대전 때 독일은 오랫동안 무기를 준비해왔지만 미국은 뒤늦게 참전하게 되어 하드웨어 측면에서 나치에 비해 월등히 불리했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포드자동차 시스템을 투입한 미국은 280만대의 탱크와 트럭, 2만7천대의 항공기, 590만대의 각종 무기를 신속하게 생산해냄으로써 연합군 승전의 결정적인 토대를 마련하였다고 역사는 평가하고 있다. 수천 수만대의 전함, 항공기, 탱크를 만들어낸 생산성의 뒷받침 없이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구상한다는 것은 불가능했기 때문에 2차대전 승리의 일등공신은 무엇보다 포드자동차의 컨베이어 벨트와 분업 몫이라는 것이다.

생산성 경쟁은 20세기 후반 들어와서 국내에서의 분업에만 국한되지 않고 과감히 국경을 넘나들게 된다. 수송 기술과 인터넷 기술이 발달하면서 정보와 물질의 대륙간 교류가 훨씬 원활해졌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인터넷 확산으로 (인터넷 버블) 대륙 간 해저 광케이블이 경쟁적으로 매설되자 대륙 간 통신비용이 매우 저렴해졌다. 그 결과로 Call Center를 미국에서 인도로 아웃소싱하는 것이 채산성을 갖게 되었다. 이 비즈니스 모델이 성공을 거두자 그 뒤를 이어 인터넷을 통한 원격 가정교사, 원격 데이터입력, 원격 연말정산업무, 원격 X-레이 사진판독, 원격 소프트웨어 개발 등이 속속 인도로 중국으로 아웃소싱 되었다. 로이터통신 기자의 80퍼센트가 이 기간 동안 백인에서 인도인으로 넘어갔다고 한다. 이제 미국의 CPA, 의사, 기자들은 과거처럼 단순 업무만 해서는 자기 자리를 지킬 수 없게 되었다. 아웃소싱 대상도 제조에만 국한되지 않고 기업의 전 영역으로 확산되게 된다. 예를 들면 아이폰회사의 R&D 본부는 보스톤에, 공장은 중국에, 물류본부는 싱가폴에, 자금부서는 뉴욕에 두는 방식이다. 즉 분업화 개념은 R&D, 사업타당성 검토, 자금조달, 공장건설, 제조, 영업 등 기업활동의 전 단계로 확산되었다. 

과거에는 기업가로 성공하려면 만능선수여야 했다. 아이디어가 있어야 하고, 사업 타당성을 판단할 수 있어야 하고, 대량생산할 수 있도록 엔지니어링할 수 있어야 했고, 공장을 건설하고, 제조를 관리하고 제품을 영업할 수 있어야 했다. 이 모든 과정 중 한 단계라도 실패하면 모든 것이 실패였다. 그러나 연구개발부터 영업까지 전과정을 한 사람, 한 회사, 한 나라가 다 책임지던 방식은 빨리 바뀌고 있다. 이제 젊은이들은 자신의 아이디어를 실현시키기 위해서는 (궂이 벤처회사를 차리지 않더라도) Kickstarter, Quirky 같은 도우미 회사의 Web에 들어가 자신의 아이디어를 글이나 동영상, 그림으로 제안하기만 하면 된다. 그러면 Kickstarter 같은 회사에는 수많은 (회원으로 등록되어 있는) 전문가들이 Web에 올려진 아이디어의 사업타당성을 조사해주고, 거기서 청신호가 켜지면 자금조달은 물론 제조나 영업을 전담하는 회사들까지 소개시켜주어 아이디어를 낸 사람에게 필요한 도우미들을 붙여주는 체제로 바뀌고 있다. 왜 미국에서 이러한 체제가 나왔을까? 이제 갈수록 웬만한 일들은 개발도상국들이 다 처리할 수 있게 되어가고 있기 때문에 선진국 (임금이 비싼) 젊은이들은 그 운신 폭이 R&D와 창조 영역으로 더욱 더 좁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선진국 젊은이들이 창의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사회체제를 만들어주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이제 국제사회에서 가난한 나라는 아니다. 개인으로 경우를 보더라도 부자 집 자식으로 태어나면 더 이상 단순하고 쉬운 일을 주어지지 않는다. 그것은 직원이나 하인들이 한다. 대신 부유한 가정 자식은 가장 고급두뇌를 쓰는 일, 창의적인 일만 하도록 내몰릴 수 밖에 없는 것과 마찬가지 이치인 것이다. 창의만이 살길이다. 

고건 <전주대학교 총장>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