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루지기 <522>하이고, 나 죽소
가루지기 <522>하이고, 나 죽소
  • 최정주 글,고현정 그림
  • 승인 2013.02.21 14: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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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상견례 <93>

“걱정허지 마씨요, 서방님. 이년이 낼이라도 인월로 나가리다.”

옹녀 년이 강쇠 놈의 가슴팍을 쪽쪽 빨다가 고개를 들고 말했다.

“인월로 나가서는?”

강쇠 놈이 거시기 놈으로 대꾸하며 물었다.

“정사령 놈이 이녁얼 찾을라고 눈에 불얼 켰담서요? 주막에 죽치고 있으면 놈이 찾아올 것이 아니요. 다행이 그 놈이 계집이라면 사죽을 못 쓴당깨, 내가 나서서 호리면 안 넘어오겄소?”

“임자헌테 안 넘어올 사내가 있겄는가? 천하의 잡놈인 변강쇠 놈도 넘어왔는디.”

강쇠 놈이 계집의 가슴에서 앵두 알 하나를 입에 넣고 오물거렸다.

“좋기넌 헌디, 이녁이 그런깨 내가 꼭 죽을 것 같소.”

그러면서 계집이 몸을 푸르륵 떨었다.

“곧 극락에 갈랑갑구만.”

이번에는 거시기 놈을 끄덕이며 강쇠 놈이 빙긋 웃었다. 옹녀 년이 아랫녁으로 화답하며 말했다.

“정사령 놈이 넘어온 듯 싶으면 넌즈시 내가 사는 집얼 알려주고 올 것이요. 허면 그 놈이 안 찾아오겄소? 서방님언 잠시 잠깐 집얼 비우고 있다가 때가 되면 몽둥이만 하나 들고 설치시오. 허면 일언 다 된 것이나 마찬가지가 아니요?”

“정사령 놈얼 집에꺼정 끌어들인다고?”

“싫소? 이녁이 싫다면 나 혼자 인월 주막에서 각단얼 내고 말제요.”

“임자가 알아서 허소. 인월 주막에서 각단얼 내던지, 집으로 델꼬 오든지. 어뜨케던 그 놈이 내 가슴팍에 창날만 안 꽂으면 된깨.”

“걱정허덜 말랑깨요. 아무려면 천하의 옹녀가 서방님 한 분 건사 못 허겄소? 무지막지헌 정사령 놈의 창날에 찔리게 맹글겄소?”

“하먼, 하먼. 강쇠헌테넌 옹녀 백이 없당깨. 우리가 참 천생연분이구만. 하늘이 내린 인연이구만.”

강쇠 놈이 아랫녁을 들썩거리다가 계집의 허리가 끊어져랴 부등켜 안았다가 거시기 놈을 움죽거렸다.

“하이고, 나 죽소.”

계집이 입을 쩍 벌리고 숨을 꺽꺽거리다가 고개를 떨구고 자지라 졌다. 강쇠 놈의 뇌리로 입에 게거품을 물고 널부러진 정사령 놈의 얼굴이 문득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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