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루지기 <517>놈을 고드겨 잠자리에
가루지기 <517>놈을 고드겨 잠자리에
  • 최정주 글,고현정 그림
  • 승인 2013.02.18 14: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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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상견례 <88>

“오널 맨키로 내가 우에서 허면 큰 일이야 당허겄소. 암튼지 몸조리 잘 허씨요.”

“알았소. 내 걱정언 허덜 말고 아짐씨 입단속이나 잘 허씨요. 내가 여그 있다는 것이 정사령이나 다른 여자들이 알고 찾아오면 아짐씨허고는 끝인깨요. 글고 이건 가져가씨요.”

강쇠 놈이 인월 주모가 가져왔던 땅문서를 내주었다.

“총각이 간직허고 있으씨요.”

“어채피 내 손으로 농사럴 질 것도 아닌디, 짐만 되요.”

인월 주모가 못 이긴듯이 땅문서를 받아들고 방을 나간 다음 강쇠 놈이 곰곰 생각에 잠겼다. 인월 주모의 말대로 정사령 놈이 눈에 불을 켜고 찾는다면 큰 일은 큰 일이었다. 아랫녁이 부실할수록 계집탐은 많고, 더구나 제 계집의 아랫녁 일이라면 눈이 뒤집히게 마련이었다. 제 아랫녁이 부실하여 계집이 딴 사내 만난 것은 생각지 않고 제 계집 절단낸 사내만 죽이려고 덤빌 판이었다.

‘이 일얼 어찌헌다?’

고개를 갸우뚱하던 강쇠 놈의 뇌리로 어떤 생각이 번개처럼 스쳐갔다. 그것은 제 놈이 정사령의 마누라인 음전네와 아랫녁 송사를 벌였듯이, 정사령놈에게도 제 마누라인 옹녀와 아랫녁을 맞추게 하자는 생각이었다. 옹녀에게 정사령 놈을 고드겨 잠자리에 들게 한 다음에 사내와 계집이 아랫녁을 맞추고 있는 순간 들이닥쳐 시퍼런 낫이라도 들이대면서 죽이겠다고 설치면 제 놈이 아무리 벙거지 쓴 사령일망정 살려달라고 애원하지 않을 수 없을 수 없을 것이었다. 그렇게만 할 수 있다면 정사령 놈을 겁내고 벌벌 떨지 않도 될 판이었다.

강쇠 놈이 이 궁리 저 궁리에 잠겨있는데 해가 질 무렵에 옹녀 년이 멀쩡한 얼굴로 돌아왔다. 입에서 술냄새를 풍기기는 했으나, 비릿한 사내냄새는 안 났다.

“어쩐 일이여? 나넌 낼이나 모레 쯤 올 줄 알았는디. 제우 술판만 벌이다가 왔는갑네.”

강쇠 놈의 말에 옹녀 년이 코를 킁킁거리다가 말했다.

“나야 일이 있어 그냥 왔제만, 방에서 이것 먼 냄새가 이리 난다요?”

“멀쩡헌 방에서 먼 냄새가 난다고 그래?”

썩을 년, 코가 개콘갑만, 하고 중얼거리며 강쇠 놈이 되물었다.

“누가 왔었제요? 그것도 계집이 댕겨갔제요? 내가 귀신인깨, 나럴 ?일 맴일랑 아예 버리씨요이.”

옹녀 년이 강쇠 놈의 얼굴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하이고, 이 년이 참말로 귀신이네. 인월 주모의 아랫녁 냄새럴 기가맥히게 맡아뿐지네이.’

강쇠 놈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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