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루지기<515>암내 난 암코양이
가루지기<515>암내 난 암코양이
  • 최정주 글,고현정 그림
  • 승인 2013.02.17 16: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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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상견례 <86>

인월 주모가 방아확을 들어올렸다 쿵하고 내려놓으며 중얼거렸다. 확 속은 뜨거웠고, 인절미처럼 쫀득거렸다. 거시기 놈이 주인의 뜻과는 상관없이 혼자 고개를 끄덕이다가 움죽움죽 움죽거리며 확 속을 휘저었다.

“좋소. 참으로 좋소. 인자사 반분언 풀리요.”

인월 주모가 히죽히죽 웃다가 앞으로 덜퍽 고개를 떨구더니 강쇠 놈의 가슴에서 녹두알을 입술로 잘근잘근 깨물었다. 순간 강쇠 놈은 머리 속이 아득해 졌다. 녹두알이 하루 저녁 물에 담근 것처럼 부풀어 오르면서 거시기 놈이 푸르르 떨었다.

“하이고, 아짐씨. 멋 땜시 불집얼 건들고 그러요? 허리 아파 죽겄는디.”

강쇠 놈이 계집의 허리를 꽉 안고 움직이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러자 계집의 확 속이 난리가 났다. 수십 마리의 미꾸라지가 꿈틀거리는 듯, 배고픈 송아지가 어미 젖을 빨듯이 쏙쏙 빨아들이다가, 조였다 풀고 풀었다 조이면서 제멋대로 거시기 놈을 가지고 놀아댔다.

그때마다 거시기 놈이 움죽꿈틀 움죽꿈틀 화답했다.

인월 주모가 끙끙 앓다가, 그렁그렁 해소병 환자의 기침소리를 내다가 끅끅끅 울다가, 암내 난 암코양이 한 마리를 두고 목덜미에 피가 맺히도록 싸우는 숫고양이 울음소리를 내던 어느 순간이었다. 거시기 놈이 확 속으로 한없이 빨려들어가는 가 싶더니, 인월 주모가 꺽꺽꺽 숨이 막혀하다가는 두 다리를 쭉 뻗고는 고개를 떨구어 버렸다.

‘흐참, 쪼깨만 더허면 나도 쌀판인디.‘

강쇠 놈이 중얼거리며 계집을 옆으로 밀어냈다. 확 속에서 고를 빼냈는데도 계집은 한참을 죽은듯이 누워있었다. 거시기 놈이 제 할 일을 다 못했다며 고개를 치켜 들고 주인의 처분만 기다렸다.

강쇠 놈이 그런 거시기 놈을 주먹으로 쿡쿡 쥐어 박으며 중얼거렸다.

‘이눔아, 아무리 눈깔이 하나 빽이 없는 외눈백이제만, 니 주인의 맴언 알아줘야헐 것이 아니드냐? 내가 언제 스라고 했간디, 빳빳이 서 가지고 품얼 팔게 맹그냐? 뒈져라, 줴져라, 이눔아.’

그래도 거시기 놈은 고개를 치켜 들고 외 눈을 부릎 뜬 채 눈물을 질질 흘리고 있었다.

‘흐참, 니 눔이 나럴 탁앴는개비구나. 흐기사 주인이 잡놈인디, 니눔만 깨끗헌체 헐 수도 없었겄제.’

아무리 그렇다고해도 거시기 놈을 그대로 둘 수는 없었다. 자칫 인월 주모가 깨어나 그 꼴을 보면 그 동안 못 찧었던 살방아를 한꺼번에 다 찧자고 나설지도 모를 일이었다. 주모가 깨어나기 전에 놈을 옷 속에 감추어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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