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루지기 <512>싹동머리 없는 놈겉으니라고
가루지기 <512>싹동머리 없는 놈겉으니라고
  • 최정주 글,고현정 그림
  • 승인 2013.02.14 16: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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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상견례 <83>

아무리 잡놈이지만, 살풀이라면 옹녀 년과 밤을 새워했지 않은가?

그렇다고 주모가 천하절색도 아니고, 이미 아랫녁의 막음창까지 훤히 꿰?고 있는 사이가 아닌가? 거시기 놈이 옛정을 못 잊어 인사치레로 고개를 까딱거린다고 해도 주인이 싫다고 나자빠지면 제 놈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강쇠 놈이 얼굴을 잔뜩 찡그리며 주먹으로 허리를 토닥토닥 두드렸다.

“내가 아짐씨의 성의를 생각해서라도 어찌어찌 해보고 싶소만, 사실언 허리럴 다쳐서 아랫도리를 놀릴 수가 없소.”

“멋이라고라? 허리럴 다쳤다고라?”

순간 인월 주모의 얼굴이 핼쓱하게 질렸다. 사내의 물건이 아무리 좋아도 허리 아픈 사내를 데리고는 살방아를 찧을 수가 없는 것이 아닌가.

“남정네헌테 허리가 얼매나 소중헌 것인디, 그걸 다쳤을꼬이. 왜 다쳤는디요? 오다가다 만낸 마누래허고 살방애럴 너무 많이 찧었는가? 흐기사, 인월꺼정 소문이 짠허게 났었응깨. 허리가 고장날만도 허제이.”

주모가 주먹으로 강쇠 놈의 허리를 토닥토닥 두드리다가 손가락으로 갈비뼈 사이를 꾹꾹 놀러보며 혹시 거짓말이 아닌가, 하고 찬찬히 바라보았다.

“그것이 아니라, 텃세를 당했소.”

“텃세럴 당허다니? 여그 산내골 사람덜이 가난언해도 떠들어 온 사람헌테 텃세럴 헐만큼 모질지는 않는디.”

“여그 사람이 아니라, 쩌그 마천 조선비네 하인덜헌테 몽둥이로 맞았소.”

“마천 조선비?”

인월 주모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마천 조선비라면 제 년도 알고 있다는 뜻이었다.

“내 주막에 들려 한양길 노자럴 다 털렸던 그 어리벙헌 선비말씸이요?”

주모가 물었다.

“어리벙허기넌요. 나럴 모른체끼 허는 것얼 본깨, 교활허기가 백년 묵은 여시넌 저리가랍디다. 제 놈 체면이 깩이까 싶어 한번 흘끔 내 얼굴얼 보고넌 됩다 고함얼 지릅디다.”

“고함얼 질러요? 머라고요?”

“저 놈얼 멍석에 말아 몽둥이로 치라고요. 거그다 대고 아는체끼했다가는 되려 덤테기럴 쓰까싶어 암말도 않고 고스란히 맞았소.”

“저런 싹동머리 없는 놈겉으니라고. 양반이란 것이 원래 그런 것인지는 알고 있었제만, 총각이 지 놈얼 위해서 얼매나 애럴 썼는디, 은혜럴 웬수로 갚는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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