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루지기 <511>사내헌테 꽃값이라니
가루지기 <511>사내헌테 꽃값이라니
  • 최정주 글,고현정 그림
  • 승인 2013.02.13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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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견례 <82>

“아요, 알아. 사내헌테 꽃값이라니, 당치 않은 것얼 내가 왜 모르겄소. 내가 오직이나 다급햇으면 새벽에 일어나자 마자 허둥지둥 달려 왔겄소. 총각이 음전네의 낫얼 피해 삼십육계 줄행랑얼 친 담에 내가 살아도 산 것 같지럴 않했구만. 밥얼 묵어도 배가 허허고, 잠얼 잘라고 누우면 총각이 떠올라서 미치고 환장허겄드만. 계집이 색에 미치면 시아부지도 몰라본다고 글드만, 내가 꼭 그짝이드랑깨.”

주모가 눈물까지 글썽이며 강쇠 놈을 올려다 보았다.

“아짐씨의 사정이 딱허기넌 허요만, 내가 시방 아짐씨허고 밑구녕 송사럴 벌일 처지가 아니요. 오다가다 만냈제만, 마누래가 있는디, 어찌 외간 여자럴 탐허겄소. 헌깨, 먼 길얼 오신아짐씨헌테 헐 소리넌 아니오만, 돌아가씨요. 언제 마누래가 돌아올랑가 모르요.”

강쇠 놈의 말에 주모가 발딱 몸을 일으키고 잡아 먹을 듯이 노려보았다.

“돌아가라고? 미친년처럼 달려 온 날더러 돌아가라고? 총각의 눈에넌 시방 내 눈이 뒤집힌 것이 안 보이요? 총각언 계집이 가심에 한얼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는 것얼 모르요?”

아닌게 아니라 주모의 눈은 광기로 번들거렸다. 정사령의 마누라인 음전네의 시퍼런 낫을 피해 산내골로 숨어든지 채 한 달도 안 지났는데, 그 동안 혼자 얼마나 애를 끓였으면 반미치광이가 되어있을까, 하는 생각에 강쇠 놈은 가슴 한 쪽이 켕겼다. 제 놈을 만나지 않았으면 하루가 멀다고 드나드는 단골 술꾼이나 지나가는 나그네를 불러들여 큰 인심이나 쓰는듯이 속고쟁이 내려주면서 그럭저럭 사내재미를 보면서 살아갈 주모를 못 쓰게 만들었는가 싶어서였다.

조선비의 한양길 노자를 찾아준다는 핑게로 시작된 살풀이였지만, 그것 몇 번에 주모를 완전히 사내한테 허천들린 계집으로 만들어버린 것이었다.

함부로 제 놈의 아랫녁 자랑을 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제 놈의 발등을 찧고 싶을만큼 주모와의 살풀이가 후회스러운 것도 아니었다. 말이야 안 되요, 안 되요, 하지만, 옹녀 년도 조선비를 만나러 가고 없는데, 더구나 어찌어찌 일이 잘 풀리면 사나흘은 조선비와 떡을 치고 올판인데, 그런 지어미를 위해 지켜야할 의리도 없었다.

다만 가끔 생각났다는 듯이 욱신거리는 허리가 문제라면 문제였다. 제 놈이 아무리 허리 하나는 타고 났다고 믿지만, 계집 앞에서는 앞 뒤 안 가리고 고개를 쳐드는 거시기 놈을 가지고 있다고 하지만, 살방아 때문인지, 아니면 조선비네 하인놈들한테 맞은 몽둥이 탓인지, 욱신욱신 뜨끔거리는 허리한테 더 일을 시켜도 되는 것인가, 판단이 안 서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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