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루지기 <510>부시시 고개드는 거시기
가루지기 <510>부시시 고개드는 거시기
  • 최정주 글,고현정 그림
  • 승인 2013.02.13 15: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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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견례 <81>

“총각, 여그 있었네? 천리나 만리나 도망가 뿌린 줄 알았는디, 엎드리먼 코 달데 있었네? 술손님덜이 산내골에 먼 색남색녀가 들어와 밤이나 낮이나 떡얼 치고 산다길래 혹시나허고 왔더니, 총각이었네.”

인월 주모가 희희낙낙 방으로 달려 들어왔다.

“먼 말씸이다요? 내가 아짐씨헌테 빚진 것이라도 있소?”

강쇠 놈이 부시시 일어나 앉아 허리끈을 매며 물었다.

“암, 빚얼 졌제. 져도 아조 큰 빚얼 졌제.”

주모가 강쇠 놈의 허리띠부터 잡았다. 그 손을 탁 뿌리치며 강쇠 놈이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내가 아짐씨헌테 빚얼 졌다고요? 외려 아짐씨가 빚얼 졌제요. 내가 밭문서도 고스란히 돌려주었고, 돈도 받을 것 제대로 안 받아가꼬 왔소. 헌디, 빚얼 졌다고요?”

“그런 빚이라면 내가 미친년처럼 왔겄소. 암소리 말고 나 한번만 안아주씨요.”

인월 주모가 눈까지 벌겋게 충혈된 채 강쇠 놈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왜 이러시오? 벌건 대낮에 멀 허자는 짓이요?”

“벌건 대낮이면 어떻고 캄캄헌 밤이면 어떻단가? 난 암시랑토 안쿠만. 언제넌 낮밤 따짐서 살방애 찧었간디.”

주모가 이번에는 아예 강쇠 놈의 허리끈을 풀고 덤볐다. 조금 전 옹녀한테 섭섭했던 거시기 놈이 그래도 옛정이 그리웠는지, 부시시 고개를 들었다. 사내의 아랫녁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주모가 그걸 모를 리가 없었다. 흘끔 고개를 들고 뱅긋 웃더니, 사내의 바지를 밑으로 죽 훑어내렸다.

그러자 거시기 놈이 아짐씨, 반갑소? 하며 고개를 발딱 치켜 들었다.

“하이고, 너 본지 오래구나.”

주모가 거시기 놈을 붙들고 볼로 부비다가 입술로 문지르며 쩝쩝 입맛을 다시다가 두 손으로 감싸안고 싹싹 비비다가 눈을 하얗게 까뒤집으며 뒤로 벌렁 누웠다.

“총각, 총각. 내가 논문서도 가꼬오고, 밭문서도 가꼬 왔구만. 총각허고 살라고 왔구만. 헌깨, 암소리 말고 우선 급헌불부텀 꺼주씨요.”

주모가 주머니에서 개발세발 먹글씨가 씌어진 종이 쪼가리를 내어밀며 사정했다.

“내가 언제 아짐씨헌테 논문서 가꼬오고 밭문서 가꼬오라고 했소? 글고, 내가 비록 잡놈이기넌해도 돈바래고 계집얼 품을 일언 없소, 언젠가 스님 말씸이 보시중에서 살보시가 젤이라고 해서 아낍없이 베풀어주기넌 했제만, 돈 바래고 살방애럴 찐 일언 없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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