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루지기 <505>불쑥 솟은 복숭아와 앵두알
가루지기 <505>불쑥 솟은 복숭아와 앵두알
  • 최정주 글,고현정 그림
  • 승인 2013.02.07 15: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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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상견례 <76>

“알겄소. 하늘이 내린 사낸디, 이년이 어 찌 서방님얼 독차지 허겄소? 주모가 되었건, 과부가 되었건 서방님이 알아서 허씨요만, 서방있는 년언 건들지 마씨요. 그런 일로 입살에 오르는 것언 싫소. 몽둥이 맞는 것언 싫소.”

두 연놈이 도란도란 그런 얘기를 나누다가 스르르 잠 속으로 빠져드는데, 첫 닭이 울었다. 강쇠 놈이 사천왕에게 쫓기는 꿈 속을 헤매다가 머리를 향해 내리치는 청룡도에 놀라 아악, 비명을 지르며 눈을 번쩍 떴다.

옹녀 년은 아직 세상 모르고 잠에 빠져 있었다. 사내를 탐하느라 목구멍에서 그르릉 소리를 내던 것과는 달리 잠 든 얼굴은 여늬 아낙처럼 평안해 보였다.

‘흐참, 이리 얌전허게 생긴 여자가 그런 요부가 되다니.’

강쇠 놈이 옹녀의 가슴에 불쑥 솟은 복숭아와 그 꼭지에 달린 앵두알을 가만히 들여다 보자 거시기 놈이 부시시 고개를 들었다.

‘이눔아, 아무리 외눈백이제만 염치가 좀 있그라. 니눔 좋으라고 내가 허리병신이 되어도 상관이 없다는 말이냐?’

속으로 중얼거리며 강쇠 놈이 거시기 놈을 주먹으로 툭툭 치는데, 언제 잠이 깨었는지, 옹녀 년이 하품을 씹으며 말했다.

“머허시오? 그놈이 비록 서방님이 달고 있기는 해도 임자는 이년이요. 구박허지 마시씨요.”

벌떡 몸을 일으킨 옹녀 년이 거시기 놈에게 가만히 입술을 댔다.

“그렇던가? 내가 달고 있어도 주인언 따로 있었던가? 임자가 그 주인이던가?”

“내 껏이 이녁 껏이듯이 이녁 껏이 내 껏이제요.”

“알겄구만. 구박허지 않음세.”

강쇠 놈이 자칫 얘기가 길어지면 옹녀 년이 또 덤벼들까봐 옷을 걸치는데, 밖에서 자박거리는 발소리가 들렸다.

“마천 주막의 주모가 온갑소. 이녁언 가만히 있으씨요이.”

옹녀 년이 서둘러 옷을 걸치고 문밖에 귀를 기울였다.

“색시, 안즉도 잠을 자는겨? 해가 중천인디, 자빠져 자는겨?”

주모가 마루에 엉덩이를 걸치고 앉으며 금방이라도 문을 열듯이 설쳤다. 그제서야 옹녀 년이 문을 열고 고개를 내밀었다.

“아니, 주모 아짐씨가 내 집언 어찌 알고 오셨소?“

“쩍구먼 입맛이라고 집 하나 못 찾을까? 나허고 얘기 쪼개만 허세.”

“그것도 일이라고 어제 쪼깨 꼼지락거렸더니, 세상 모르고 잤는갑소. 헌디, 아짐씨가 나헌테 먼 헐 말씸이 있으끄라우?”

옹녀 년이 입이 찢어져라 하픔을 하며 마루로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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