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륜범죄가 남긴 것
패륜범죄가 남긴 것
  • 이보원
  • 승인 2013.02.04 15: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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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이건 아니다. 사람이 할 짓이 아니다.

아무리 사람 목숨이 파리목숨 같고 웬만한 충격은 충격으로조차 인식되지 않는 감성이 무디어진 세태라지만 인두겁을 쓰고 어찌 이럴 수 있단말인가. 지난달 30일 전주시 덕진구 송천동의 한 아파트에서 일가족이 가스에 중독돼 부모와 큰 아들이 목숨을 잃고 둘째 아들이 부상을 입는 참변이 빚어졌다. 세상 사람들은 이때만 해도 이 가족들이 생활고를 비관했거나 뭔가 말 못할 가정사와 속사정이 있어서 이런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 아닌가 마음 아파했다.

하루 평균 42.6명, OECD국가 중 가장 높은 자살률 데이터가 말해주듯 이번 사고도 가정불화나 생활고에 의한 동반자살, 아니 그렇게 믿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사건을 수사한 경찰 발표는 경악을 넘어 큰 충격이 아닐수 없다. 대학 휴학생 아들이 재산을 노리고 부모와 형을 살해한 패륜범죄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치밀한 준비로 완전범죄를 노렸다는 대목에서는 말문이 막힌다.

이 아들은 범행 당일 아파트 작은방에서 부모에게 수면제를 탄 음료수를 먹인 뒤 잠들자 미리 준비한 연탄 화덕에 불을 피웠다.

그리고 연탄 가스를 마시고 부모의 목숨이 사그라지는 시간을 벌려고 새벽까지 형과는 밖에서 술을 마신 뒤 뒤늦게 아파트로 돌아와 같은 방법으로 형의 목숨도 빼앗았다.

더구나 이 아들은 20여 일 전에도 부모를 살해하려 시도했으나 실패했다.

콩나물 공장에서 일을 하고 집에 돌아와 잠자리에 든 부모를 죽이려고 베란다 보일러 연통을 뜯어내 방안으로 연기가 스며들도록 했다.

매캐한 가스 냄새에 부모가 잠에서 깨면서 1차 시도는 무산됐다.

그리고 재차 범행에 나선 이 아들의 범행 준비는 더 치밀하고 대범해 졌다.

집 근처에 원룸까지 얻어 놓고 연탄 화덕을 구입하고 모의실험까지 하는 등 치밀하게 범행을 준비했다.

그리고 천륜을 저버린 채 자신을 철석같이 믿었던 부모와 친형 등 가족의 목숨을 아무런 죄책감 없이 앗아갔다.

자신의 끔찍한 범행을 은폐하려는 치밀함도 잊지 않았다.

아버지 핸드폰으로 공장 직원들에게 “내일은 출근하지 마라. 나도 안갈 것이다”는 문자를 발송했다. 형을 살해한 후에는 카카오톡으로 “행복하라. 잘 살아라.”는 마치 자살을 암시하는 듯한 내용을 남기고 형의 차량에 연탄을 실어놓는 등 형에게 범죄를 뒤집어씌우는 완전범죄까지 노렸다.

그러고도 장례식장에서 상주 노릇을 하며 눈물까지 흘리며 문상객들을 맞았다. 사람의 탈을 쓰고 일말의 양심과 가책, 후회와 죄책감도 갖지 않았는지 되묻고 싶다.

가족이 무엇인가. 피를 나누고 한솥밥 먹기 때문에 소중한 것이 아니다. 험난한 세파,각박한 인심에 상처받은 영혼이 마지막 기댈 안식이자 위안이기 때문에 더없이 소중한 존재다.

최소한 가족이라도 믿고 의지하며 살아야하건만 어쩌다 부모자식, 형제도 믿을 수 없는 무서운 세상이 됐는지 모르겠다.

악마라는 표현밖에 달리 마땅한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말수가 적고 내성적인 성격이지만 고교 때 학업성적도 우수했고 대학 재학중 군복무까지 마친 어찌 보면 우리 사회의 평범한 청년일 수 있다.

흔히 군대갔다오면 사람 된다고 한다.

철부지처럼 속못차리고 부모 속을 썩이던 자식도 군대 가서 고생하고 조직생활을 하다 보면 철이 들고 사람 구실을 하게 성숙해 진다는 의미다.

그동안 이 아들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죄는 정말 밉다. 그리고 그 죄의 대가는 반드시 치러야 마땅하다. 하지만 우리가 여기에서 곱씹고 또 곱씹어야 할 대목은 이 아들에게만 패륜범죄의 책임을 물을수 있느냐하는 의문이다. 천륜을 끊는 패륜범죄는 우리 사회의 인륜과 도덕이 한계점에 왔다는 경종이다. 철저하게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우리 사회 모두가 뼈저리게 성찰하고 참회하지 않는다면 둘째 아들 같은 패륜범죄는 이제 시작에 불과할지 모른다. 황금만능주의와 땅에 떨어진 인륜과 도덕 등 사회병리현상의 결과다. 무한경쟁과 승자독식에 함몰된 그릇된 사회 풍조를 바로잡아야 한다. 올바른 인성과 내가 누구인지 끝없이 자문자답하며 성찰하는 자세를 갖도록 인성교육과 공교육의 회복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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