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루지기<495> 슬그머니 밀어 눕혀놓고
가루지기<495> 슬그머니 밀어 눕혀놓고
  • 최정주 글,고현정 그림
  • 승인 2013.01.31 14: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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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상견례 <66>

“주막 계집은 호불호도 없는 줄 아시오? 주막 계집은 때와 장소도 모른 줄 아시오? 누가 오까 무섭소. 얼른 손 치우씨오.”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옹녀 년이 사내의 손을 모질게 뿌리치지는 않았다. 시늉으로만 안 되요, 안 되요, 하면서 손을 밀어낼 뿐이었다. 계집이라면 치마만 둘러도 좋다고 덤벼드는 조선비가 계집의 그런 속내를 모를리 없었다. 계집을 뒤로 슬그머니 밀어 눕혀놓고 두 다리로 아랫녁을 깔고 앉으며 하늘을 향해 씩 웃었다.

‘이 놈얼 시방 각단을 내뿌러?’

사내의 능글능글한 웃음에 옹녀 년의 뇌리로 그런 생각이 스쳐갔다. 그러나 그래서는 안 될 일이었다. 삼거리 주막에 일손을 거들어 준다고 찾아온 까닭이 무엇인가? 정자 위에서 살풀이 한번 했다고 서방님을 붙잡아다가 개패듯이 두들겨 팬 양반 조선비한테 앙갚음을 하기 위해서 꾸민 수작이 아니던가? 사내라면 서방님 하나면 족했다. 물론 새김치만 먹다보면 어쩌다가는 신김치도 먹고 싶은 날이 오기야 하겠지만, 아직은 아니었다. 서방님과의 질펀한 방사 몇 번으로 아직도 아랫녁이 꽉 찬 듯이, 움찔움찔 꿈틀거리던 서방님의 연장이 아직도 그곳에 있는듯이 생각만으로도 온 몸이 짜릿짜릿한 옹녀 년이었다. 조선비와 살풀이를 하고 싶은 욕심은 눈꼽만큼도 없었다.

그렇다고 너무 매정하게 대해서도 안 될 일이었다. 자칫 조선비가 이 계집은 쉽게 속고쟁이를 벌려줄 년이 아니라고 체념을 하게 되면, 서방님의 앙갚음은 못하게 될지도 몰랐다.

옹녀 년이 가만히 있자 자신이 생긴 사내가 허리춤을 뒤지더니, 제법 묵직해 보이는 금가락지를 꺼내어 눈앞에 디밀었다.

“어떠냐? 나를 받아주면 이것을 너한테 줄 것이다. 다른 동무들 것보다 두 배는 값이 나갈 것이니라. 해우채를 엽전으로 준비하려다가 엽전은 무거울 것같아 금가락지로 만들었니라. 한번 오입값으로 두돈짜리 금가락지면 애기기생의 머리를 얹어줄 값은 안 되겠느냐?”

조선비가 금가락지를 옹녀 년의 눈앞에서 빙빙 돌렸다. 어쩌다 한 돈짜리 금가락지는 구경을 했지만, 두 돈짜리를 눈앞에서 보기는 또 처음이었다. 침이 저절로 꿀꺽 삼켜질만큼 욕심이 생겼으나 옹녀 년이 말했다.

“그것은 나헌테 줄라고 가져 온 것이 아니지 않은개비요. 춤추고 노래하던 꽃같은 기생헌테 줄라고 가져온 것이 아니요?”

“너를 만내기 전에야 그랬지. 헌데 어제 오후 너를 잠깐 보고 난 다음에 맘이 바뀌었니라. 초홍이 년이나 춘심이 년이사 동무들과 구멍동서 된지 오래고, 그년들의 젖통이며 아랫녁 수렁길이 어찌 생겼는가도 다 아는데, 함양에 쓸만한 계집이 없어 그년들을 데리고 오기는 했다만, 그년들보다 네가 열 배는 좋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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