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루지기 <494> 귓가에 뜨거운 입김을
가루지기 <494> 귓가에 뜨거운 입김을
  • 최경주 글,고현정 그림
  • 승인 2013.01.31 14: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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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상견례 <65>

“어디, 나하고만 잘 맞던가? 조선비하고도 잘 맞고 김선비하고도 잘 맞지 않은가. 그나저나 오늘 자네 수고하겠네. 사내들을 떼로 상대해야허니. 엽전은 무거울 것이고, 내가 특별히 금가락지를 준비했구만.”

이선비가 허리춤의 주머니에서 금부치 하나를 꺼내어 초홍이 년의 손에 꼬옥 쥐어주고는 먼저 몸을 일으켰다.

‘인자본깨, 저 년은 기생이 아니라 갈보구만. 돈만 주면 아무 놈한테나 치마를 올려주는 갈보여. 참, 더런 놈의 인간들도 다 있구나. 명색이 선비란 놈덜이 갈보 두 년얼 데려다가 아랫구녕이나 맞추고.’

옹녀 년이 제 처지는 생각지 않고 침을 퉤 뱉는데, 이선비가 오리나무 숲을 나와 정자 쪽으로 돌아갔다. 초홍이 년이 그런 이선비를 흘끔 바라보다가 금가락지를 노리개와 함께 달린 주머니에 간직하고 몸을 일으켰다.

그런데 이선비를 따라 정자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오리나무 숲을 빠져나와 계곡으로 내려가는 것이었다. 사내를 품었으니, 뒷물이라도 할 모양이라고 짐작하며 옹녀 년이 허리를 편 때였다. 누군가 뒤에서 와락 부등켜 안았다.

“어메, 이 일얼 어쩐디야?”

옹녀 년이 나즈막히 비명을 내지르며 제 자리에 털썩 주저 앉았다.

“아까부터 뒤에서 지켜보고 있었지. 두 사람의 방사를 침얼 질질 흘리며 보고있더군. 어떠냐? 아랫녁에 고뿔이나 안 들었느냐? 콧물이 흐르지 않으냐?”

조선비 놈이 손 하나를 옹녀의 가슴에 넣고 다른 손은 치마 속을 더듬으며 이죽거렸다.

“이러지 마씨요. 이년이 그리 하찮은 계집이 나이요. 금부치 하나에 땅바닥에서도 치매럴 올리는 갈보가 아니란 말씸이요.”

옹녀 년이 가슴을 더듬는 사내의 손목을 꽉 움켜잡으며 말했다.

“이년아, 잡놈이 잡년을 알아본다고, 내가 네 년의 속내를 펄쌔눈치채고 있었니라. 어제부터 나한테 보내 온 제발 나 한번 안아달라는 네 년의 간절한 눈빛을 내가 어찌 몰라보겠느냐?”

조선비가 계집의 아랫녁을 손가락으로 확인하며 귓가에 뜨거운 입김을 불어넣었다.

“이 년이 언제 그랬소? 정숙헌 여자가 어찌 낯선 사내헌테 눈길인들 준단 말씸이요. 우연히 눈길이 마주칠 수도 있잖소. 어서 이 손을 치우씨요. 안 그러면 소리를 지를라요.”

“소리를 지른다고? 어디 질러보그라. 누가 눈 하나 까딱헐 중 아냐? 좋게 말헐 때 내말을 다소곳이 듣는 것이 좋을 것이니라. 삼거리 주모한테 들으니, 주막을 굴러다니던 계집이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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