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루지기 <492>그 잘 난 물건 생각헌깨...
가루지기 <492>그 잘 난 물건 생각헌깨...
  • 최정주 글,고현정 그림
  • 승인 2013.01.30 17: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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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상견례 <63>

어찌나 허퉁시럽던지 저녁내 내가 한 잠도 못 잤구만. 자네가 보기에 내 얼굴이 밉상인가? 내가 여직껏 맘에 둔 사내를 놓친 일이 없는디. 잘 난 물건 가진 그 사내넌 물건만 자랑허고 가뿌리드랑깨.”

“지조가 있는 사낸갑소.”

“그 얘기 그만허새. 잘 난 물건 생각헌깨 또 몸이 요상시러지네.”

“호호, 참고 사니라고 애쓰시요, 아짐씨가.”

옹녀 년이 주모의 꼬드김을 뿌리치고 밤길을 털레털레 걸어왔을 서방님을 떠올리며 빙긋 웃었다. 그런 서방님을 두고 비록 서방님의 부탁이기는 하지만, 딴 사내를 홀려 어찌어찌 아랫녁까지 맞출 생각에 가슴이 설레었던 자신을 떠올리자 몽둥이 찜질 당한 몸으로 아랫녁방아까지 찧느라고 생고생을 한 서방님한테 미안해지기도 했다.

‘고맙소, 서방님. 내가 어뜨케던 조선비 놈얼 홀려가꼬, 서방님의 분풀이럴 허게 맹글제요.’

옹녀 년이 내일 어떻게 조선비를 꼬드길까를 곰곰히 궁리하며 중얼거렸다.

다음날이었다. 정자 아래 계곡가에 가마솥이 걸리고, 가마솥 안에서 누렁이 한 마리가 통채로 익어갈 때에 조선비가 친구들을 끌고 왔다. 그것도 퇴기임이 분명한, 한 눈에 보기에도 나이 서른 가까이는 될 것 같은 기생들도 두 명 데불고 였다.

‘세상에 기생의 씨가 말랐든개비구나. 저런 년도 기생이라고 데리고 오다니.’

옹녀 년이 속으로 중얼거리며 가마솥에 불을 때는데, 명색이 선비들의 천렵이라고 돌아가며 시도 한 수 씩 ?고 하던 천렵판이 이내 놀이판으로 바뀌었다.

기생 하나가 장고를 치고 다른 기생이 춤을 추는가 싶더니, 나중에는 기생 둘이 모두 장고춤을 추었다. 옹녀는 춤과 노래를 귀동냥 눈동냥하며 부지런히 개고기며 다른 안주들을 주모가 시키는 대로 정자 위로 날랐다.

자신은 철저히 놀이판에는 관심이 없고, 오직 심부름만 할 뿐이라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알게 모르게 조선비한테 틈틈이 눈길을 주었다. 그러다가 눈길이 마주치면 얼른 고개를 돌리는 체 했다. 어쩔 수 없이 천렵판에서 심부름은 하고 있지만, 다만 품삯 몇 푼이 아쉬었을 뿐, 자신은 함부로 몸을 굴리는 계집이 아니라는 시늉을 보였다.

술판이 좀 더 무르익었을 때였다. 사내들이 초홍이라고 불렀던 기생이 소피라도 보려는지 정자 뒤로 돌아갔다. 그러자 초홍이의 어깨를 안고 손가락이 저고리 섶 사이로 들어 갈둥 말둥, 옷고름 위의 불룩한 곳을 손바닥으로 쓰다듬으며 손장난을 치던 이선비가 나도 소피나 좀 봐야겄구만, 하고 중얼거리며 따라갔다.

정자 뒤로 조금만 올라가면 울창한 소나무 숲이 있었고, 소나무 숲을 지나 열 댓 걸음 내려가면 빽빽한 오리나무 숲이 대낮에도 어두컴컴했다. 초홍이 년이 뒤에서 사내가 따라오는가 오쩌는가 곁눈질하며 오리나무 숲 속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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