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산도 구들장논
청산도 구들장논
  • 이동희
  • 승인 2013.01.28 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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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에 슬로우시티 청산도(靑山島)에 다녀왔다. 전주에서 완도항까지 승용차로 3시간 정도 걸리고, 완도항에서 청산도까지 뱃길로 45분 거리다. 한겨울 망망대해와 찬 바닷바람은 감동과 설렘이었다. 천년에도 늙지 않은 바다는 나와 너무도 대조적이었다.

완도군에 속한 청산도는 1993년 서편제가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면서 널리 알려졌다. 2007년 슬로우시티 지정은 관광명소로서 청산도의 가치를 드높였다. 조용하고 한적하여 슬로우시티가 되었을 터인데 이제 관광시즌에는 붐비는 사람들로 몸살을 앓는다고 한다.

청보리가 일렁이고 유채꽃이 피어 관광의 절정을 이루는 4월과 5월에는 무려 15만명이 청산도에 다녀간다고 하며, 이때는 한 달 전에 숙박 배편 등의 예약이 끝난다고 한다. 배는 40분 간격으로 다님에도 자리가 모자라 입석으로 다녀야 할 정도라고 하였다.

겨울 청산도, 청보리와 유채꽃은 없었지만 넘치는 사람도 없었다. 산골짝마다 펼쳐진 다랑이논, 마을 골목골목의 옛 돌담길, 아늑한 포구와 섬을 둘러싼 너른 바다 등 청산도의 경관은 서편제 영상과 겹쳐져 왜 이곳이 슬로우시티가 되었는지 알려주었다. 빼어난 자연경관에 전통이 남아 있는 곳, 그래서 사람을 포근하게 감싸주고 삶을 돌아보게 해주는 곳, 청산도는 이런 곳이기에 슬로우시티가 된 것 같다.

이번 청산도행에서 경관과 함께 감동받은 것은 처음 듣고 본 구들장논이다. 이 특별한 논은 청산도를 바라보는 인문학적 시각을 제공했다. 이 논은 경관이 아니라 청산도 사람들의 지혜와, 삶에 대한 애환과 애착을 담은 문화유산이다.

구들장논은 외형적으로 보면 산자락에 일군 다랑이논으로 논둑을 돌로 쌓아 놓은 산비탈 계단식 논이다. 그러나 안으로 들어가 보면 여느 계단식 논과 다르다. 구들장논은 논둑만이 아니라 논바닥 전체에 돌을 깔고 그 위에 흙을 덮어 논을 친 것이다.

마치 온돌에 구들장을 깐 것처럼, 논바닥에 돌을 깔아 놓았다고 해서 구들장논이라고 한다. 돌이 많아 물이 쉽게 빠져나가는 문제를 해결하고, 비탈져 흙이 씻겨 내려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16,7세기경부터 비롯된 농법이라고 한다.

구들장처럼 깔아 놓은 논바닥 돌로 물이 빠지고, 돌로 쌓은 논둑에 수구를 만들어 윗논물이 아랫논으로 흘러들어 저 윗논에서 아랫논까지 물을 대는 형식이다. 또 논바닥 돌에는 큰 홈을 파서 물이 괴어 있게 하여 수분을 계속 가지도록 하였다.

구들장논은 그 특출난 농법으로 국가농어업유산 1호로 등재되었고, 앞으로 국제식량농업기구(FAO) 세계중요농업유산제도(GIAHS)에 등재를 신청할 계획이다. 계획대로 진행되어 청산도 경관에 숨은 섬사람들의 삶이 자랑스런 문화유산으로 자리했으면 한다.

돌이 많은 것을 역으로 활용하여 구들장논을 조성하여 자연의 척박함을 극복하려 한 청산도 사람들의 지혜와 의지는 어디에 나왔을까? 청산도에는 김해김씨를 비롯하여 몇 개의 성씨들이 모여 산다고 한다. 하룻밤 묵었던 지리마을도 김해김씨들이 큰 길을 사이에 두고 파를 달리하여 살고 있다.

청산도는 지금도 많은 인물들이 배출되고 있다고 한다. 조선말의 일이지만 문신 김류가 거문도 유배에서 풀려 고향으로 돌아가다가 이곳의 풍경에 취해 터를 잡고 후학을 양성하였다. 숭모사는 그를 기리는 사당이다. 슬로우시티 청산도에는 경관만이 아니라 인문학적인 면이 자리하고 있었다.

전주한옥마을이 2010년 슬로우시티로 지정되었다. 한옥마을이 슬로우시티로 지정된 데에는 외형상 한옥이 중심을 이루겠지만, 거기에 배인 전주의 오랜 역사와 문화예술적 토양이 그 배경이 되었을 것이다. 따라서 한옥마을이 슬로우시티로 전통문화도시의 거점으로 계속해 자리해 가기 위해서는 문화예술적, 인문학적 양분이 지속적으로 제공되어야 할 것이다.

이동희<전주역사박물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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