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루지기 <488>아랫녁에 불붙은 것도...
가루지기 <488>아랫녁에 불붙은 것도...
  • 최정주 글,고현정 그림
  • 승인 2013.01.28 18: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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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상견례 <59>

옹녀 년이 마주보며 물었다.

“그것이 아니라, 여염의 아낙겉지넌 않고, 멋 허는 여잔가?”

“부처님 눈에넌 부처님만 뵈이고, 멋 눈에넌 멋만 보인다드니, 주모 아짐씨 눈썰미도 그만허면 쓸만허요이. 내가 쩌그 아랫녁 주막에서 술병 나름서 묵고 살았는디, 사내놈들 등쌀에 도망치다시피 여꺼정 흘러왔소.”

“주막 계집이었어?”

주모가 아예 와상에 엉덩이를 내려놓았다.

“아짐씨가 안 그랬소? 여염의 아낙겉지는 않다고. 허면 계집이 헐 일이 멋이 있것소? 사당패 아니면 술집 작부제요. 술병나르기도 지긋지긋허여 쓸만헌 홀애비나 없는가 씰레씰레 돌아댕기는 중이요.”

말끝에 옹녀 년이 어디 그런 사내 없소? 하는 눈빛으로 주모를 바라보았다.

“이 사람아, 그런 홀애비럴 찾을라면 그래도 사람이 많이 사는 동네럴 댕겨야제, 퇴깽이허고 입맞추는 산골짜기로 오면 어쩌는가?”

“어디서건 인연이 있으면 만나겄제요. 헌디, 장국밥허고 탁배기넌 안 주실라요?”

“아, 줘야제. 쪼깨만 지달리소.”

주모가 생각났다는 듯이 부억으로 들어 가 불을 지폈다. 그동안 옹녀 년은 주막의 여기저기를 찬찬히 살펴보았다. 손님은 별로 없는지 한 식경 남짓이나 있어도 밥손님은 커녕 술손님도 없었다.

“주막이 적적허요이. 손님도 없는 것 같고.”

장국밥과 탁배기를 가지고 온 주모한테 옹녀 년이 심드렁하니 물었다.

“가끔언 옹골진 손님도 있응깨. 내 한 입 걱정언 않고 사는구만.”

“입벌이허면 됐제요.”

더 이상 관심이 없다는 듯이 옹녀 년이 장국밥 한 그릇을 탁배기를 반주 삼아 맛 있게 먹어댔다. 그러면서도 주모가 언제 내 일 좀 안 거들어줄랑가? 하고 물어올까를 기다렸다. 서방님 말이 내일 조선비가 천렵을 한다고 했으니, 오늘 쯤은 그 준비로 주모가 많이 바쁠 것이고, 기왕에 주막살이하던 계집이라는 것을 밝혔으니, 쉽게 그 말이 나오리라 믿었다.

옹녀 년의 예상대로 수저를 내려놓자 주모가 상을 한 쪽으로 밀어놓고 가까이 다가 앉으며 물었다.

“색시, 홀애비 찾는 일이 급헌 것언 아니제?”

“왜라우? 아랫녁에 불붙은 것도 아닌깨, 급헐 것언 없소만.”

“허면 내 일 좀 도와줄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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