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자치와 행정적 가치
기초자치와 행정적 가치
  • 박기영
  • 승인 2013.01.24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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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이후 한국사회에 지방자치가 처음으로 소개되어진 계기는 아마도 제헌헌법에서 그 근거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제헌헌법 첫머리에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고 선언하고 있었으니 민주주의 체제구축의 존립요체라고 할 수 있는 지방자치가 헌법 조문에서 제외될 수는 없었을 터이니 말이다.

허나 이후 한국정치에서 지방자치의 시행문제는 별의별 이유와 핑계에 의해서 질곡과 형극의 길을 걷지 않을 수 없었다. 예컨대 자치여건과 자치능력이 미숙하다느니, 자치재원의 확보가 난망하고 또 국론분열의 위험성이 많다느니 혹은 획일성의 파괴로 적(敵)의 준동이 우려된다느니 하면서 자치다운 자치를 시행하지 않았거나, 그것도 아니면 아예 자치시행에 대한 논의 자체가 타부시 되었던 것이 사실이었다.

그런 와중에서 사십 수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그러고 나서 ‘90년대 초 지방의회가 구성되고 또 곧 이어 주민직선에 의한 자치단체장이 선출되어지면서 한국사회에는 현재 모습의 지방자치시대를 맞이하게 되었다.

때문에 한국에 자치시대를 개막시켜 준 ’80년대 말의 민주화운동은 4ㆍ19의거나 반탁운동에 뒤질 바 없는 한국역사에 길이 빛날 혁명적 거사이었음은 분명하다.

헌데 한 가지 아쉬웠던 점을 지적한다면 민주화운동의 결과로 연유되어진 ‘90년대 초의 자치시대의 전개가 지방자치의 양대 목표의 하나인 ’봉사의 극대화‘를 모토로 하고 있는 행정가치적 이념이 무시된 채 ’권한과 편익의 배분‘이라는 정치가치적 이념에 편향된 채 진행되었다는 사실이다. 원리상 지방자치가 지향하는 궁극적인 목표는 주민들로 하여금 ’보다 나은 삶을 향유‘토록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구현시키기 위해서 지방자치는 정치적 차원에서의 ’풀뿌리 민주주의의 실천‘과 더불어 행정적 차원에서의 ’양질의 서비스를 보다 많이 개발하고 이를 잘 전달‘하는 것을 실천목표로 하고 있다.

그러나 민주화운동의 결과로 쟁취된(?) 한국의 지방자치는 개막부터 지금까지 ’정당공천과 주민직선을 통한 지방의원과 자치단체장의 선출‘이 곧 절대 절명의 목표 이자 그 자체인 것처럼 인식되어지고 있다. 때문에 현재 한국의 지방자치는 한마디로 정치입지자들, 이른바 직위선점자들의 직위유지 투쟁과 직위갈구자들의 직위쟁취 투쟁이 상충하는 불꽃 튀는 투견장(?)처럼 변모되고 있다. 지방자치가 지향하는 바 주민들에게 ’보다 나은 삶의 향유‘를 구현시킨다는 본래적 목표는 물론 이를 위해 양질의 서비스를 보다 많이 개발하여 잘 전달하여야 한다는 실천목표도 철저하게 망각하면서 말이다.

허나 그런 와중에서도 보도기관의 전언과 지역 주민들의 진술 그리고 전문가들의 평가를 집약하여 보면 지방자치의 본래적 목표구현에 충실하고 있는 수범적인 자치단체들도 전무 하지는 않다. 가까이에서 그러한 지역들을 찾아보면 장수군이나 무주군과 같은 경우가 그러한 사례가 아닌가 생각되어 진다.

장수군과 무주군은 국책사업의 개발범주에서도 항상 빗겨나 있으며 개발여건과 입지조건 역시 열악하기 그지없는 지역이다. 자치단체장 또한 타 시ㆍ군의 경우처럼 하루가 멀다 하고 매스컴을 도베질(?) 하며 광을 치는 사람들도 아니다. 그런데도 그들 지역 주민들을 만나보면 그들은 모두가 그들 지역은 자치시행 이전보다 자치시행 이후가 더 살기가 좋아졌고 또 더욱 풍요로워졌다고 스스름 없이 말하고 들 있으며, 외부 평가전문가들 또한 이들 지역에 대하여 긍정적 평가를 주저하지 않고들 있다.

그리고 그들이 말하고 있는 자치 만족의 연유에 대한 공통적인 화두는 그들 지역은 ①집행기관과 의회 및 주민간의 화합과 진정성, ②단체장의 리더쉽과 탈정치화 , ③절대빈곤 지역에서의 재정건전성 확보, ④지역특화사업을 통한 소득증대, ⑤주민생활지원사업에의 신속한 대응 등등으로 집약되고 있다.

헌데 문제는 그들이 설파하고 있는 화두인즉 외계인의 괴성이 아니라 자치를 통해 성취하여야 할 상식적 물상들이라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이제부터라도 우리는 자치를 통해 정치적 가치의 편취에만 몰입되지 말고 주민을 위한 행정적 가치의 개발과 배분에 정진하여야 할 것이다.

<박기영(전북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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