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루지기<485>이년이 맷돌얼 돌리제요
가루지기<485>이년이 맷돌얼 돌리제요
  • 최정주 글,고현정 그림
  • 승인 2013.01.24 14:3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9 상견례 <56>

강쇠 놈이 땀으로 범벅이 된 몸으로 들어서자 문을 꽁꽁 걸어 잠근 채 방 가운데 앉아 오들오들 떨던 옹녀 년이 눈물을 질금질금 쏟으며 일어나 반겼다.

“흐따, 씨부랄 놈덜이 어찌나 모질게 몽둥이질얼 허는 통에 임자도 못 보고 죽는 줄 알았구만. 아이고고, 나 죽겄다.”

강쇠 놈이 방바닥에 덜퍽 주저 앉으며 엄살을 떨었다.

“어디 쪼깨 보십시다. 어디럴 얼매나 다쳤는지.”

옹녀 년이 사내를 안아 눕혀놓고 바지부터 벗겨내렸다. 그리고 제일 먼저 확인한 것이 사타구니 사이였다. 밤길을 걸어 온 무서움 때문이었는지 거시기 놈은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야가, 왜 이리 얌전허다요? 펄새 반갑소, 험서 고개럴 까딱까딱 절얼 헐 판인디.”

“그놈도 옹골지게 겁이 났는갑만.”

강쇠 놈이 조금 전까지 왕성하게 일어서던 놈을 생각하며 속으로 싱긋 웃었다.

“아무리 겁이 나도 그렇제, 설마 요놈도 맞은 것언 아니제요? 겉으로 보기에넌 멀쩡헌 것 같소만, 너무 얌전헌깨 이상허요.”

그렇게 말하면서 옹녀 년이 거시기 놈을 손으로 가만가만 쓰다듬었다가 좌우로 흔들어 댔다. 그러자 놈이 나 괜찮허요, 하며 슬며시 깨어났다. 한번 몸을 일으킨 놈이 내 키가 이만허요, 하며 벌떡 일어섰다.

“다행이요. 이놈언 괜찮헌갑소. 지 쥔얼 알아보고 반갑다고 인사허요. 참말로 다행이요. 이놈만 무사허면 됐소. 나넌 이놈만 무사허면 서방님이 다른 것언 다 병신이 되어도 상관없소. 내 몸으로 밥벌이해서 서방님얼 믹여살릴 수 있소.”

옹녀 년의 말에 강쇠 놈이 썩을 년, 꼭 잡년겉은 소리만 허고 자빠졌구만이, 하고 뇌까리며 입을 열었다.

“나도 그놈이 어혈지까 얼매나 조심했는디. 조진사네 머슴놈덜이 내 그놈이 대물인지넌 어찌 알았는지, 꼭 거그만 칠라고 뎀비드만. 다른 데는 어혈이지건 병신이 되건 그놈 한 놈만 지킬라고 용얼 썼구만.”

“고맙소, 서방님. 내가 시방 요놈얼 쥑이고 싶은디, 낮에 다 못 죽인 요놈얼 쥑이고 싶은디, 괜찮겄소?”

“임자껏인디, 구어 묵건 쌀마 묵건 누가 뭐라겄능가? 헌디, 내가 사방디가 콕콕 쑤셔서 우로넌 못 올라가겄는디.”

“이년도 염치가 있소. 설마 서방님더러 방애꺼정 찌라고 허겄소? 이년이 맷돌얼 돌리제요.”

옹녀 년이 옷을 홀랑 벗고는 강쇠 놈의 사추리를 타고 앉아 맷돌을 돌렸다. 처음에는 매 맞고 온 서방님을 생각하고 살살 돌리다가 흥이 오르자 밑에 깔린 강쇠 놈이야 아프다고 고함을 지르건 말건 입술을 악물고 맷돌을 돌렸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