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루지기<483>돈이 없으면 몸으로
가루지기<483>돈이 없으면 몸으로
  • 최정주 글,고현정 그림
  • 승인 2013.01.23 15: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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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상견례 <54>

겁을 주느라 그러는지, 아니면 정말 호랑이가 나오는지 주모가 어깨까지 으쓱하며 말했다.

“마누래가 지달릴 텐디요이.”

“서방님이 끌려가 먼 봉변얼 당허는가도 모르는 판에 얼굴도 안 내미는 여편네가 지달리기는 멀 지달린다고 그러시오. 암소리 말고 내 집에서 주무시씨요.“

주막 앞에서 시늉으로 버티는 강쇠 놈을 주모가 어거지로 끌어들였다. 내가 집으로 가야쓰는디, 마누래가 지달리는디, 어쩌고 씨부리면서 강쇠 놈이 못 이긴 체 끌려 들어갔다. 주모가 미리 준비해놓고 있었는지, 자반고등어까지 한 도막 올려진 밥상겸 술상을 먼저 들여 주었다.

“나 돈 없소.”

강쇠 놈이 주모의 속내를 떠보느라 짐짓 말했다.

“돈 받자고 내는 밥상이 아니요. 돈이 없으면 몸으로 때와도 되요.”

주모가 자반고등어 한 점을 떼어 수저 위에 놓아주었다.

“임자 있는 몸이라서 몸으로 때우기도 그렇소.”

“몸으로 때우라는 소리도 안 헐 것인깨, 잡수기나 허씨요. 얼릉 묵고 한번 보십시다. 어디럴 얼매나 다쳤는지, 어혈진디는 없는지, 차근차근히 보십시다.“

“인자넌 젼딜만 허요. 아까는 꼭 죽는 줄 알았는디.”

“큰 액땜 했소.”

“헌디, 조선빈가 조한량인가 허는 사람언 여그 안 오요?”

“왜 안 오겄소. 참새가 방아간얼 마다허겄소? 헌디 그것언 왜 묻소?”

“아까 얼핏 보았는디, 얼굴이 쥐새끼 상인 것이 영 싸가지 없게 생겼습디다.”

“그렇게 악인언 아닌디. 일년이면 나럴 절반언 믹여 살리는디.”

주모가 뜨악한 표정을 지었다.

밥 한 수저를 우적우적 씹어 삼키고 강쇠 놈이 물었다.

“무신 말심이요? 절반언 믹여 살리다니요?”

“철철이 한량동무들허고 천렵얼 허는디, 내가 안주럴 다 장만해주요. 떡허면 고물이 떨어진다고, 떡고물도 솔찬허제만 수고비로 주는 돈이 한번 천렵에 한 달 벌이는 된깨 글제요. 나헌테넌 은인이요.”

“내가 보기에넌 개망나니든디, 은혜럴 원수로 갚는 망나니든디.”

“이녁이 멋 땜시 그런가 몰라도 그리 악인언 아니요. 아참, 낼 모레 그 양반이 동무덜 여나믄명허고 정자에서 천렵얼 헌다는디, 이녁이 와서 쪼깨 거들어 줄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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