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루지기 <480>숨이 컥컥 막혔다
가루지기 <480>숨이 컥컥 막혔다
  • 최정주 글,고현정 그림
  • 승인 2013.01.22 15: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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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상견례 <51>

강쇠 놈이 고래고래 고함을 질렀으나 몽둥이만 무지막지하게 쏟아질 뿐이었다. 조선비가 매우치라고 했는지, 아니면 주모 앞에서 했던 살살 치겠다던 약속을 잊었는지, 몽둥이가 내려칠 때마다 숨이 컥컥 막혔다.

얼마를 그렇게 맞았을까. 인자는 죽었구나. 양반님네 정자 우에서 방사 한번 잘못했다가 내가 꼼짝없이 죽고 말겄구나, 하는 생각에 정신이 가물가물 해질 때였다.

몸둥이 찜질이 멈추고 멍석이 풀렸다.

“이놈아, 이 정도로 끝난 것을 다행으로 알거라”

하인 한 놈이 몽둥이를 집어 던지며 말했다. 정신이 가물거리는 속에서도 뻔뻔스런 낯짝이나 보려고 고개를 들었으나, 마루에 조선비는 없었다. 제 놈도 속은 켕겼는지 서둘러 자리를 피한 모양이었다.

“다시는 정자 근처에는 얼씬도 말거라. 한번만 더 그러면 가운뎃 다리를 뽑아뿌릴텐깨.”

재각의 대문을 나서는 강쇠 놈한테 하인 하나가 이죽거리듯 말했다.

‘씨부랄 놈, 지랄허고 자빠졌네. 이눔아, 두고 보그라. 내가 니 쥔 놈부터 고개를 들어 하늘얼 못 보게 맹글아 뿌릴 것인깨. 조선비, 이놈 두고 보그라. 내가 오널의 보개피넌 꼭 허고 말 것인깨.’

강쇠 놈이 이를 갈며 조씨 문중의 재각을 나와 인월 쪽으로 절룩이며 걸어왔을 때였다. 주막의 불빛이 저만큼 보여 한숨을 내쉬며 털썩 주저 앉는데, 어둠 속에서 누군가 불쑥 앞으로 나섰다.

옹녀인가 싶어 임잔가? 하고 묻자 나요, 나, 하는 목소리가 주모였다.

“하이고, 아짐씨. 나 죽겄소. 나 쫌 살려주씨요.”

강쇠 놈이 털썩 주저 앉으며 엄살을 부렸다. 몽둥이로 맞은 자리가 욱신욱신 쑤시기는 했지만, 다행이 어디가 부러진 것 같지는 않았다. 그래도 아랫녁까지 확인시킨 주모를 만나자 반가움에 앞서 엄살이 먼저 나온 것이었다.

“내가 내동 당부를 했는디도, 그 쳐쥑일 놈덜이 심허게 다룬 모냥이요이. 썩어빠질 놈덜 겉으니라고, 쳐 쥑일 놈덜 겉으니라고. 내가 이놈덜아, 앞으로넌 시디신 탁배길 망정 공짜로 주능가 보그라.”

가까이 다가 온 주모가 강쇠 놈을 잠시 살피다가 오만상을 찌푸리고 있는 사내의 모습에 호들갑을 떨었다.

“많이 다쳤소? 걸음도 못 걸을 만큼 다쳤소? 어디 뿌러진 데는 없소?”

“뿌러지던 안 헌 것 같은디, 사방데가 쑤셔서 못 살겄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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