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루지기 <479>에라이, 양반인지 똥반인지...
가루지기 <479>에라이, 양반인지 똥반인지...
  • 최정주 글,고현정 그림
  • 승인 2013.01.21 12: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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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상견례 <50>

조씨문중의 재각은 주막을 지나 모퉁이 하나를 돌아서자 이내 나왔다. 벌써 기별을 받았는지, 마당에 관솔불 몇 개가 활활 타고 있었고, 그 앞에 멍석 한 닢이 펼쳐진 채 깔려있었다.

“서방님, 정자를 데럽힌 놈얼 잡아왔구만요.”

사내가 강쇠 놈을 멍석 위로 밀어 쓰러뜨려 놓고 말했다.

“계집은 어쩌고. 사내 놈만 잡아 왔느냐?”

마루에 앉아있던 사내가 잔뜩 심통이 난 목소리로 물었다.

“예, 계집언 미꾸라지 처럼 빠져나가뿌렀구만요.”

“병신겉은 놈덜, 그까짓 계집얼 놓치다니. 밥빌어다 죽 쑤어묵을 놈들이구나.”

마루 위의 서방님이라고 불린 사내가 손바닥으로 마루짱을 탁 쳤다. 그런데 목소리가 어쩐지 귀에 익었다. 글깨나 읽은 선비의 점잖고 묵직한 목소리가 아니라, 사또 앞에서 알랑방구를 뀌는 이방의 목소리처럼 간드러진 그 목소리가 귀에 착 달라붙는 것이었다.

강쇠 놈이 고개를 조금 들고 헝클어진 머리카락 사이로 사내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 사내였다. 한양으로 과거를 보러가다가 인월 주막의 주모와 젊은 계집에게 노자를 털리고 한숨을 푹푹 내쉬던 바로 그 선비였다.

강쇠 놈이 손으로 머리카락을 쓸어올리고 조선비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하이고, 선비님. 이놈이 멀 모르고 죽을 죄럴 저질렀구만요. 이번만 용서를 해주시면 다시는 선비님네 정자에는 얼씬도 안헐랑구만요.”

그 쯤 해두면 조선비가 알아보고, 아랫것들 앞에서 반가운 체는 못할 망정 한번 실수는 병가지 상사라고 했으니, 이번만은 특별히 용서해주거라, 하는 말이 나올 줄 알았는데, 그것이 아니었다.

강쇠 놈을 내려다보는 눈빛이 한 번 꿈틀하는 것 같더니, 이내 얼굴이 벌레라도 씹은듯이 일그러지더니, 눈에 서릿발이 확 서는 것이었다.

“무엇하느냐? 저 놈을 당장에 망석에 말아 몽둥이 찜질을 하지않고.”

조선비의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하인들이 강쇠 놈을 멍석에 둘둘 말았다. 미처 손을 쓸 사이도 없었고, 조선비를 향해 항변을 할 틈도 없었다.

그리고 이내 몽둥이가 쏟아져 내렸다.

“이보시오, 조선비. 댁네가 나헌테 이럴 수는 없는 일이제요. 오다가다 만낸 것도 인연이라고 당신이 계집들한테 노자럴 싹 털리고 한양길이 맥혔을 때, 그 돈얼 찾아 준 것이 누구였소? 설마 나럴 모른다고는 않겄제요? 알면서도 모른체 하는 것이제요? 내가 이래서 양반 종자덜허고넌 상종얼 안 헐라고 했는디, 에라이, 양반인지 똥반인지, 후레자식같은 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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