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루지기 <477>퇴깽이보다 빠른 년일쎄
가루지기 <477>퇴깽이보다 빠른 년일쎄
  • 최정주 글,고현정 그림
  • 승인 2013.01.18 15: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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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상견례 <48>

“네 이놈, 순전히 쌍것 주제에 정자를 더럽히다니, 이놈 맛 좀 보거라.”

제법 눈빛이 똘방거리는 사내 하나가 몽둥이로 강쇠 놈의 어깨부터 한 대 내리쳤다.

“아이코, 조코. 아파 죽겄소. 이보시오. 어르신님네덜, 이놈이 먼 잘못이 있다고 다짜고짜 몽둥이 질이시오?”

강쇠 놈이 엉겁결에 당한 일이라 앞으로 푹 주저 앉으며, 그 순간에도 옹녀 년이 알아듣고 도밍가라고 큰 소리로 냅다 고함을 질렀다.

“네 이놈, 인두껍얼 쓰고 어찌 양반님네의 정자 위에서 방사를 헌다는 말이냐? 이보게들, 계집은 먼 저 간 모냥이니, 두어 사람이 쫓아가서 잡아오소.”

“알았구만. 우선 사내놈부터 재각으로 끌고 가소. 안 그래도 상놈들이 무시로 드나든다고 진사나리께서 홰럴 내셨는디, 잘 되었구만. 그동안 당헌 분풀이나 허세.”

다른 사내가 그 말을 남기고 서둘러 옹녀가 사라진 쪽으로 급히 달려갔다.

“여보게, 임자. 삼십육계 줄행랑을 치소. 내 걱정언 말고 당신이나 잘 숨소.”

사내들이 달려가는 쪽을 향해 강쇠 놈이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이런 쳐 죽일 놈이, 어쩌고 하면서 사내 하나가 몽둥이로 강쇠 놈의 옆구리를 몽둥이로 후려쳤다. 매에는 이골이 난 강쇠 놈도 숨이 컥 막혀 땅바닥을 딩굴면서 컥컥거렸다.

“일어나거라, 이놈아.”

처음 몽둥이질을 했던 사내가 발로 툭 차며 말했다.

“예, 예. 일어나제라우. 일어날 것인깨, 제발 몽둥이질언 그만허시씨요. 잘못허면 사람 병신 되겄소.”

강쇠 놈이 뻐르적거리며 일어났다.

“이놈아, 조진사 어르신이 얼매나 애끼시는 정잔디, 니눔이 그걸 더럽힌단 말이냐? 니눔언 인자 죽었다.”

“그것이 그리 큰 죄인 줄 모르고, 저지른 일인깨 한번만 봐주씨요. 나랏님도 모르고 저지른 죄넌 용서럴 해주신다고 그럽디다.”

“허허, 이놈이 참으로 뻔뻔시런 놈일쎄. 우리가 니눔얼 봐주고 싶어도 진사 어르신헌테 용코로 걸려서 봐줄 수가 없구나.”

강쇠 놈이 하이고, 인자넌 죽었구나, 하고 한숨을 내쉴 때였다. 옹녀를 잡으러 갔던 사내들이 빈 손으로 돌아왔다.

“허참, 그 년 걸음이 퇴깽이보다 빠른 년일쎄. 치마자락얼 본 것같은디, 금새 어디로 사라지고 없드라고. 사내놈이라도 잡았으니 크게 나무라지는 않을 걸세. 이놈이라도 끌고 가세.”

“그러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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