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루지기 <473>밤으로 적적허시겄소
가루지기 <473>밤으로 적적허시겄소
  • 최정주 글,고현정 그림
  • 승인 2013.01.16 14:5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9. 상견례 <44>

“팔자가 좋기넌요. 헌디, 주막이 너무 적적헌 것 같소. 손님이 이리 없어서야 입에 풀칠이나 허겄소.”

“그래도 묵고는 사요. 투전판이라도 벌어지면 하루 이틀에 한 달 묵을 것언 챙기요.”

“투전판도 벌어지요?”

듣던 중 반가운 소리라서 강쇠 놈이 반색을 했다.

“약초꾼들이 함양장에나 인월장에 약초를 내다 팔고 오다가 투전도 허고 그요.”

“약초꾼이요?”

“손님도 보시다시피 산이 깊어 들이 좁소. 논밭이라고 해봐야 조씨문중에서 다 차지하고 있으니, 묵고 살 것이 없소. 소작도 짓고, 틈틈이 약초도 캐서 팔아묵고 사요.”

“헌깨 멋이냐? 약초꾼이 투전판얼 벌이는 날이 함양장날이나 인월장날이라는 말씸이제요?”

“왜요? 아자씨도 투전얼 좋아허시요? 아서시요, 마시요. 내 이날 이때 껏 투전 좋아허는 남정네 치고 제대로 식구들 건사허고 사는 꼴얼 못 보았소.”

“내가 꼭 투전얼 허겄다는 것이 아니라, 그냥 물어 본 것이요. 헌디, 건개거리는 없소. 급히 나오느라 안주도 못 챙겼는디.”

“안주거리야 따로 있겄소. 고추장에 박아놓은 더덕 장아찌가 있고, 혹시나 싶어 자반고등어 몇 손 소금에 절여논 것이 있소.”

주모가 안주라도 좀 팔아먹을까 싶었는지 얼굴색을 폈다.

“더덕장아찌허고, 간고등어 한 마리 꿔주씨요. 맨입으로야 어디 술을 마시겄소.”

“닷 푼 내시오. 술 두 푼허고 안주 서푼이요.”

주모의 말에 강쇠 놈이 허리에 차고 있는 주머니에서 돈 닷푼을 꺼내어 주었다. 주모가 안주를 장만하는 동안 강쇠 놈이 주막의 여기저기를 꼼꼼이 살펴보았다. 겉으로 보기에는 달랑 방 하나 밖에 없는 주막인 줄 알았는데, 뒤곁으로 돌아가자 술방이 두 개가 더 있었다. 그런데 아무리 살펴보아야 남정네의 짚세기는 눈에 띄지 않았다.

“바깥양반은 멀허시오.”

나무그릇에 더덕장아찌를 담고, 창호지에 간고등어를 싸서 건네주는 주모에게 강쇠 놈이 물었다.

“서방은 없소. 펄새 십년 전에 지리산에 약초캐러 갔다가 독사에 물려 죽었소.”

“그래요? 밤으로 적적허시겄소. 안직도 한참 때인 것 같은디.”

“그런다고 설마 술장시 해 묵는 년이 사내럴 굶겄소?”

그런 말을 하는 주모의 눈빛이 순간 반짝 빛났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