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루지기 472>마누래허고 지리산 구경
가루지기 472>마누래허고 지리산 구경
  • 최정주 글,고현정 그림
  • 승인 2013.01.16 14: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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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상견례 <43>

양반한테 특별히 해꼬지를 당한 일도 없으면서 강쇠 놈이 마음이 켕겨 주위를 두리번 거렸다.

“요짐이 화전허는 철도 아닌디, 별 일이야 있을랍디여. 정껄쩍지근허면 아예 쪼깨만 더 가든지요. 은대암 공양주보살헌테 들은 소린디, 요쪽으로 쪼깨만 더가면 함양 마천이란디가 나온다고 그럽디다. 삼거리에 주막도 있다고 글든디요.”

“안 쪽으로 들어가도 사람사는 동네가 있었는갑네.”

“이년도 안 가보았소만, 공양주보살이 거지꼴얼 헐랍디여, 얻어묵을 것도 없는디.”

“흐기사, 암튼지 다리도 아프고 헌깨 쩌그서 쉬드라고. 탁배기만 두어 병 있으면 하루 놀기넌 딱 좋겄구만.”

“정 묵고 싶으면 이녁이 핑 댕겨오든지요. 쩌그 모퉁이만 돌아가면 주막이 있겄소.”

“임자가 그걸 어뜨케 알아?”

강쇠 놈이 옹녀 년을 찬찬히 살피며 말했다.

“주막 밥 몇 년 묵다보면 저절로 알아지는 것이 그것이요. 풍수 눈에넌 묘뚱만 보이고, 주막계집 눈에는 주막만 보이는 벱이요. 한 눈에 척 본깨, 주막이 있을 것 같소.”

“임자가 귀신이 다 됐는갑네.”

“내게 몇 푼 있는디, 디리끄라우?”

“돈언 내게도 있구만. 허면 임자넌 정자 그늘에서 땀이나 식히고 있소. 내가 핑 댕겨올랑개.“

강쇠 놈이 아무래도 좋은 풍광 앞에서는 술 한 잔이 제격이라는 생각에 옹녀 년을 정자로 내려보내고 자신은 가던 길을 계속 갔다.

아닌게 아니라 옹녀 년의 짐작이 맞아 한 식경도 못 걸어 주막이 하나 나왔다. 냇가의 다 쓸어져가는 초가집이었다. 강쇠 놈이 긴가민가 기웃거리자 나이 마흔 쯤 되어보이는 아낙이 마루에 앉아있다가 들어오시요, 탁배기도 있고, 장국밥도 끓여주요, 하고 손짓을 했다.

“장국밥은 됐고, 탁배기나 두어병 주시요.”

“자시고 가실라요?”

“어디가요. 가꼬가서 묵을라요.”

강쇠 놈이 마루에 걸터 앉아 내 건너를 바라보았다. 내에는 나무다리가 길게 놓여있었는데, 건너편에도 띄엄띄엄 집이 보였다.

“여그가 마천이요?”

“맞소, 마천이요. 헌디, 이 근방 분언 아닌 것같은디, 천렵이라도 나왔소?”

“천렵은요. 마누래허고 지리산 구경 왔소.”

“팔자가 좋은갑소. 마누래럴 데리고 천렵얼 다 나오고.“

주모가 탁배기 두 병을 건네주며 흘끔흘끔 살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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