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루지기 <471>방사도 못허고 몇 번 깔짝이다...
가루지기 <471>방사도 못허고 몇 번 깔짝이다...
  • 최정주 글,고현정 그림
  • 승인 2013.01.15 15: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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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상견례 <42>

“알로 가면 인월이 나온다는 것언 이녁도 알제요? 인월장에 볼 일이 있는 것도 아니고, 웃 쪽으로 한번 가봅시다. 쪼깨만 더 가면 은대암이라고 있는디, 이년이 한 때 거그서 불공얼 디린 일이 있구만요.”

마을을 빠져나와 소구루마가 다닐만큼 넓은 길로 나왔을 때, 옹녀 년이 좌우를 번갈아 살피며 말했다. 막상 밖으로 나오니까, 제 년도 기분이 영 싫지만은 않은 모양이었다. 얼굴에 복사꽃을 피운 것이었다.

“자네가 불공얼?”

강쇠 놈이 하늘을 향해 씩 웃었다.

“이부자네 집에 씨받이로 들어갔을 때 말이요. 한 눈에 척 본깨, 이부자허고 살방애럴 찧었다가는 그날루다 고태골로 갈 상인디, 보약이라도 한 제 묵으라고 허고, 이년언 핑게김에 불공이나 디리겄다고 했더니, 이부자가 아들 욕심이 있었던지 그냥 보내줍디다.”

“젤국에는 죽었담서?”

“방사도 못허고 몇 번 깔짝이다가 시르르 가뿌립디다.”

옹녀 년이 말끝에 한숨을 내 쉬었다. 막상 죽은 사내를 떠올리자 제 처지가 한심스러워진 것이었다.

“워낙이 약골이었는갑만.”

“내가 약골만 배우에 태운 것도 아닌디, 하나같이 고태골로 갑디다. 헌디, 이녁언 괜찮소? 눈앞이 어릿어릿허고, 다리가 후둘후둘 안 떨리요? 어디 보십시다. 코피넌 안 쏟았소이. 용쏘. 참으로 용쏘. 이년허고 한 달 남짓이나 살풀이럴 했음서도 쌩쌩헌 것얼 본깨, 이녁언 타고 난 장사요. 인자사 이년이 한시름 놓았소. 사실언 구름얼 탐서도 이녁이 고태골로 가는 것언 아닌가, 걱정이 태산같앴소.”

“씰데없는 걱정얼 했구만. 계집 한번 품었다고 고태골로 갈 것같앴으면 백번도 더 갔일 것이랑깨.”

그렇게 도란 거리며 한참을 걸은 다음이었다. 옹녀 년이 아득한 산 위를 바라보면서 쩌그가 은대암이요, 하고 손으로 무릎을 토닥거렸다.

“겁나게 높은데 있네. 구름 속에 있는 것 같은디.”

“은대암 시님이 도가 높으신 분이구만요.”

“긍깨, 높디높은 곳에다 암자럴 짓고 살제. 다리도 아픈디, 어이서 쪼깨만 쉬었다가 가까?”

강쇠 놈이 두리번 거리는데, 저만큼 아래 쪽에 그럴듯한 정자가 하나 있었다. 옹녀 년도 그걸 보았는지 그 쪽으로 발길을 돌리며 말했다.

“제법 행세깨나 허는 문중의 정자겉은디, 쌍것이 더럽혔다고 머라고 안 헐랑가 모르겄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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