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루지기 <470>먹고 마시고 심심하면 살방아
가루지기 <470>먹고 마시고 심심하면 살방아
  • 최정주 글,고현정 그림
  • 승인 2013.01.15 15: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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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상견례 <41>

“왜라우? 우리가 고집얼 피웠으면 줄 기세든디요.”

“그것언 박센얼 죽으라는 것이나 마찬가지구만.”

“그랬소? 이년이 도독년 맴뽀였소? 욕심이 심했소? 나또 꼭 여섯 가마럴 받을 맴으로 그런 것언 아니요. 죽는 소리럴 허면 봐줄라고 했소.”

“기왕 아새끼럴 봐줄라면 지 엄니가 올 때 꺼정 봐주랬다고, 인심얼 쓸라면 첨부터 팍팍 써뿌러야헌당깨, 안 그러고 알탕갈탕 애럴 멕이다가 쓰면 고마운 줄도 모른당깨.”

“이녁 말씸이 백번 옳소. 앞으로넌 멋이건 이녁 말대로 허리다. 심심헌깨 살방애나 찝시다.”

옹녀 년이 눈까지 게슴츠레해지면서 강쇠 놈의 가슴을 파고 들었다. 눈에 핏기까지 어리는 것이 그냥은 물러나지 않을 것같아 허허참, 사람도 살탐이 너무 많구만, 어쩌고 중얼거리면서 옹녀 년의 저고리 고름을 풀었다.

“좋소, 참으로 좋소. 내 평생에 이리 오감진 재미는 첨이요. 배가 꿀찌헌깨 우리 밥이나 묵고 또 허십시다.”

극락문전을 들락이다 깨어난 옹녀 년이 콧소리를 흥얼거리며 부억을 들락거렸다. 그렇게 시작된 연놈의 살방아찧기는 이레가 가고 열흘이 갔다. 선소작료를 가지고 온 웃말 박가를 시켜 화주를 동이 째 가져다 놓고, 돼지고기를 팔러 다니는 백정의 아낙한테 날마다 들리라고 일러놓고 먹고 마시고 심심하면 살방아를 철퍽철퍽 찧으며 세월아 가거라, 그렇게 살았다.

그런 어느날이었다. 늦으막히 아침을 먹은 강쇠 놈이 오랫만에 마당에 나와서서 하늘을 올려다 보며 중얼거렸다.

“날씨 한번 환장허게 좋구만. 농사럴 안 진깨 얼매나 좋아. 이보게, 옹녀. 오널언 우리 지리산으로 천렵이나 가는 것이 어떻겄는가?”

“천렵이요? 나넌 방구석이나 팠으면 좋겄구만. 산이 산이제 별 난 산이 있을랍디여? 내가 걸음얼 별로 안 걸어 쪼개만 걸어도 다리가 아픈디. 그냥 집에 있습시다.”

옹녀 년이 시큰둥한 표정을 지었다.

“내가 경상도에 살 때부텀 지리산이 좋다는 말만 들었제, 한번도 구경을 못했구만. 지리산이 지척인디, 한번 가보세. 쇠털겉이 많은 날인디, 날마다 살방애만 찜서 살 수 있겄는가? 임자의 불그죽죽헌 낯짝얼 본깨, 또 딴 염사가 있는 모냥인디, 낮에 새꺼리럴 묵어뿔먼 긴긴 밤에 어쩐당가? 방안에 있응깨, 딴 맴이 생기는 것이구만. 산에나 가자고. 가다가 다리가 아프면 물가에 앉아 놀다가 오고. 얼렁 주먹밥이라도 몇 개 맹글라고. 탈탈 굶음서 천렵얼 헐 수도 없응깨.”

강쇠 놈이 훌훌 털고 몸을 일으켰다. 할 수 없다는 듯이 옹녀 년이 주먹밥을 싼다, 옷을 갈아입는다하고 소드레를 한바탕 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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