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루지기 <469>내 몸으로 번 논인디
가루지기 <469>내 몸으로 번 논인디
  • 최정주 글,고현정 그림
  • 승인 2013.01.14 15: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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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상견례 <40>

웃말 박가가 잠시 머리를 굴리다가 물었다.

“얼매럴 주실라냐고 내가 먼첨 물었소.“

강쇠 놈의 말에 박가가 손가락으로 셈을 해보다가 다섯 가마는 디리겄구만요, 하고 대꾸했다.

“논 열마지기에 제우 다섯 가마요?”

이번에는 옹녀 년이 어림도 없다는 표정으로 한 마디 거들고 나왔다.

박가가 말했다.

“하이고, 아짐씨도. 선소작료라는 것이 잘못허면 소작인헌테넌 비상이나 마찬가진 것인디, 다섯 가마도 겁나게 많이 디리는 것이구만요. 이놈이 다섯 가마를 장리로 얻으면 가실에 여섯 가마 반얼 갚아야허는디, 그 정도면 평년작일 때 소작료 몫이구만요. 만에 하나 가뭄이라도 들어 실농얼 허게되면 이놈언 폭삭 망허는구만요.”

“아자씨가 망해서는 안 되제요. 내 논얼 소작지었다가 아자씨네가 망허면 우린들 기분이 좋겄소. 그래서 꼭 소작얼 지라고넌 못 허겄소. 헌깨, 잘 생각해보고 결정얼 허시씨요. 아자씨가 싫다면 아랫말 이센헌테 ?길수도 있고요. 암튼지 나넌 선소작료로 쌀 여섯가마넌 받아야겄소.”

옹녀 년의 말에 웃말 박가가 한참을 넋을 놓고 서 있다가 쌀 여섯 가마럴 돌라는 것언 우리 식구들더러 굶어 죽으라는 소린디요이, 하고 울상을 지었다. 그 모습을 잠시 바라보고 있던 강쇠 놈이 나섰다.

“됐소. 여섯 가마가 많으면 다섯 가마만 가꼬 오시씨요.”

“참말로 그래도 되끄라우? 고맙소. 바깥양반이 화끈해서 좋소. 허면 지가 이길로다 바로 선소작료를 가져오리다.”

웃말 박가의 얼굴이 활짝 펴졌다. 옹녀가 쌔코롬한 낯빛으로 강쇠 놈을 바라보았다.

“내 몸으로 번 논인디, 어째서 이녁 맴대로 이래라 저래라허시오?”

“다섯 가마면 됐구만. 저 양반도 묵고 살아야헐 것이 아닌가. 우리가 쬐깨 얘낌서 살면 되제.”

“이녁 맴이 정그렇다면 그리 허십시다. 아자씨, 쌀로 가져오지 말고 그걸 장에 팔아 돈으로 가져오시오. 두 식구가 양석으로 묵으면 얼매나 묵겄소. 떡도 사묵고 술도 사 묵을라면 돈이사 쓰제요.”

“허면 그렇게 허겄구만요. 쌀얼 사서 돈으로 가져오제라우.”

그런 말을 남기고 박가가 돌아 간 다음이었다. 강쇠가 말했다.

“임자도 참, 도체기 맴뽀도 아니고, 선소작료를 참말로 쌀 여섯가마럴 받을라고 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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