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루지기 <468>사내의 가슴을 만지작
가루지기 <468>사내의 가슴을 만지작
  • 최정주 글,고현정 그림
  • 승인 2013.01.14 15: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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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상견례 <39>

옹녀 년이 강쇠 놈 곁에 가만히 누워 손으로 사내의 가슴을 만지작거리며 눈을 반짝였다.

“소작료란 것이 원래 가실에 농사가 끝나고 받는 것인디, 그걸 이자럴 감해주고 미리 받자는 것일쎄. 쌀가마니나 있다고해도 이것 저것 가용에 쓰다보면 몇 쪼금이나 가겄는가? 글고 내가 투전판엘 간다고 하드래도 빈 손으로야 가겄는가? 자네가 들병이 장시럴 헌다고 해도 다먼 몇 푼이라도 있어야헐 것이 아니겄는가?”

“이녁 말씸이 백번 옳소. 허면 그렇게 허십시다. 전에 짓던 사람이 선소작료럴 주고라도 짓겄다면 그 사람헌테 지라고 허고, 안 되겄다면 다른 사람얼 찾아보십시다. 헌디, 선소작료로 얼매나 돌라고 허끄라우?”

“쌀로 다섯 가마넌 받아야겄제.”

“다섯 가마요? 그놈만 가지고도 우리 두 입언 묵고 살겄소.”

“사람이 밥만 묵고 살 수 있간디. 명색이 살림이라고 채렸는디, 이것 저것 들어갈 것이 오직이나 많겄냐고.”

두 연놈이 도란거리고 있는데, 처음에 소작을 짓겠다고 왔던 웃말 박가가 허겁지겁 찾아와서 아짐씨, 아짐씨, 하고 불렀다.손으로 강쇠 놈의 바지춤 속을 뒤적이고 있던 옹녀 년이 얼굴을 찡그리며 일어나 앉아 왜 그러시요? 하고 물었다.

“아짐씨헌테 디릴 말씸이 있어 왔구만요.”

“나헌테 허실 말씸언 아까막시 허고 안 갔소?”

옹녀 년이 문을 열었다.

“아랫말 사는 이가 놈이 댕겨갔담서요? 그놈헌테 소작얼 주시기로 했담서요?”

“이센이 그럽디까? 생각해보마고 했소.”

옹녀 년의 말에 웃말 박가가 마당에 털썩 무릎을 꿇었다.

“아짐씨, 제발 이놈 쪼깨만 살려주씨요. 아까도 말씸디렸다시피 그 논얼 소작 못 지면 우리 식구가 다 굶어죽소. 아랬말 이가넌 천수답일망정 닷마지기나 소작얼 짓고 있소. 구관이 명관이란 말도 안 있소? 내가 그 논얼 십년이 넘게 소작얼 지었소. 논바닥 사정얼 누구보담도 잘 알제요. 나락 한 톨이라도 내가 더 낼 것이구만요. 헌깨, 이놈헌테 소작얼 주씨요.”

웃말 박가의 우는 소리에 강쇠 놈이 기웃이 얼굴을 내밀었다.

“선소작료로 얼매럴 내놀라요?”

강쇠 놈의 물음에 박가가 뜨악한 표정을 지었다.

“선소작료라우? 시방 내 형편으로넌 그걸 디릴 형편이 안 되는디요.”

“그것이사 묵고 살만헌 집에서 장리쌀얼 얻으면 될 것이 아니요.”

“이자가 한 가마당 서말인디. 허면 얼매나 디리면 되겄능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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