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루지기<466>애썼소 방애 찧니라고
가루지기<466>애썼소 방애 찧니라고
  • 최정주 글,고현정 그림
  • 승인 2013.01.11 17: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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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상견례 <37>

강쇠 놈이 방아고를 거두어 들이며 물었다.

“애썼소. 찧기싫은 방애럴 억지로 찧니라고.”

옹녀 년이 일어나 앉아 저고리 고름을 맸다.

“방아확이야 가만히 있어도 되제만, 방아고는 심얼 써야 안 되는가? 사내와 계집이 다른 점이 그것이구만. 임자가 영 션찮헌갑구만. 허나 오늘만 날이던가? 서나서나 허세. 살방애라는 것이 조곤조곤 이 쪽 저 쪽을 짚고 얕게, 골고루 찧어야 허는 것인디, 동네 사람덜이 오다가다 듣고 욕얼 헐지도 모르고, 대명천지 밝은 날에 낮뜨겁기도 허고, 그래서 서둘렀응깨, 임자가 이해럴 허소.”

“누가 머란다요? 쪼깨만 누어 있으씨요. 얼렁 밥해 올텐께요.”

옹년 년이 서둘러 찧은 살방아가 영 섭섭치만은 않았던지 생긋 웃으며 방을 나갔다. 그리고 쩍쩍 갈라터진 방구들을 통해 연기 몇 낟이 올라오는가 싶더니, 시디신 김치와 간장 종지가 달랑 놓인 밥상을 들고 들어왔다.

“밥 묵읍시다. 겅개가 영 시원치 않소. 낼이라도 내가 인월장에 한번 댕겨와야 쓰겄구만요.자반고딩어라도 몇 손 사와야 쓰겄소.”

옹녀 년이 허술한 밥상이 미안했던지 한 마디 던졌다.

“언제넌 우리 입이 비린 것 탐허고 살았던가? 목구녕으로 밥알얼 넴기는 것만으로도 천행이제.”

강쇠 놈이 없는 반찬을 미안해하는 옹녀 년 보란듯이 단숨에 밥 한 그릇을 비워내고 트림까지 끄윽하는데, 마당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아까 그 사람이 또 왔는갑소.”

옹녀 년이 밥상을 들고 일어섰다. 강쇠 놈이 혹시 정사령은 아닌가 하는 마음에 얼른 문구멍에 눈을 대고 밖을 살폈다. 찾아 온 손님은 정사령도 아니었고, 조금 전 소작논을 달라고 왔던 웃말 박가도 아니었다.

박가 나이 또래의 다른 사내였다.

“어쩐 일로 제 집엘 오셨소?”

옹녀 년이 물었다.

“아짐씨헌테 사정 말씸얼 디릴라고 왔구만요.”

“먼 사정인디요?‘

옹녀 년이 아예 밥상을 마루에 놓고 쭈글트리고 앉으며 물었다.

“나넌 아랫말 사는 이가인디, 산내골 아짐씨 논 열마지기럴 나헌테 소작얼 주시씨요.”

사내가 다짜고짜 말했다.

“그 논언 내가 우리 바깥양반허고 농사럴 질라고 허는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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