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루지기 <464> 소작료를 얼매씩 바쳤소?
가루지기 <464> 소작료를 얼매씩 바쳤소?
  • 최정주 글,고현정 그림
  • 승인 2013.01.10 15: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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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상견례 <35>

웃말 박가의 넉두리에 옹녀 년이 얼굴을 찡그리는데, 강쇠 놈이 앞으로 나섰다.

“댁네 사정이 참 딱허요이. 헌디, 운봉 이부자헌테 소작료를 얼매씩 바쳤소?”

옹녀 년이 그것은 왜 묻느냐는 듯이 돌아보았다.

박가가 허리를 잔뜩 굽히고 두 손을 싹싹 비비며 대꾸했다.

“시절에 따라 따르기넌 허요만 열가마씩은 바친 것 같소. 마름 어른이 농사된 것 보고 올해넌 얼매럴 바치그라 허시면 바치란대로 바쳤구만요. 시절이 잘 될 때넌 열 한 가마도 바치고, 숭년이 들면 일곱가마나 여덜가마럴 바치기도 했고라우.”

박가의 말에 강쇠 놈이 옹녀 년을 바라보았다. 그 눈빛 속에는 임자, 가만히 놀고 있어도 쌀이 일고 여덜 가마는 들어올텐디, 머헐라고 쎄빠지게 고생얼 헌당가? 하는 속내가 담겨 있었다.

그걸 모를 계집이 아니었다. 강쇠 놈만 눈치채라고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문 밖의 웃말 박가한테 말했다.

“논 열마지기에 제우 그것빽이 안 된갑소이. 나넌 열 댓가마넌 될 줄 알았는디.”

“시절이 아조 잘 돼야 나락으로 여나믄섬 묵는구만요. 그나마 비가 안 잦으먼 보리라도 갈아묵은깨, 우리 식구가 살제요. 나락 농사만 지어서넌 목구녕에 거미줄 치기 딱 맞구만요. 아짐씨, 저헌테 ?겨 주시씨요. 넘보다 일찍 일어나고, 넘보다 물구멍 한 번이라도 더 봐감서 넘보다 더 잘 질랑만요. 우리 다섯 식구 목심 살린다 치시고, 저헌테 ?겨 주시씨요.”

박가가 금방 울음이라도 터뜨릴 것 같은 얼굴이라서 마음이 약해진 옹녀가 강쇠 놈을 돌아보고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겄소? 하고 눈짓으로 물었다.

“임자가 몸으로 번 논인깨, 임자가 알아서 허소만, 우리도 손도 있고 발도 있는디, 판판이 놀아서 쓰겄는가?”

강쇠 놈이 속은 놀놀하면서도 웃말 박가가 들으라고 큰 소리로 말했다.

“그렇제요? 젊으나 젊은 것덜이 두 손 두발 판판이 놀림서 떡방애나 찧고 살먼 하늘이 노허겄제요?”

옹녀 년이 맞장구를 쳤다.

“긍깨 말이시. 죽으면 썩을 살인디 애껴서 멋헌당가? 살았을 때 부려묵어야제.”

강쇠 놈의 말에 옹녀 년이 문 밖의 박가를 돌아보았다. 박가는 아까보다 더욱 허리를 굽힌 채 눈까지 축축히 젖어 있었다.

“아짐씨, 제발 적선에 한번만 봐주씨요. 올해도 응당 내가 농사럴 지려니, 탐탐허고 있었는디, 마른 하늘에 날벼락맨키로 올해부텀언 주인이 바뀌었다고 허니, 사람이 미치고 환장허겄구만요. 어뜨케던 올해만 지가 짓도록 은혜럴 베풀어 주시씨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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