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루지기 <457> 나 얼른 한번 안아주씨요
가루지기 <457> 나 얼른 한번 안아주씨요
  • 최정주 글,고현정 그림
  • 승인 2013.01.06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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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상견례 <28>

처음에는 멀뚱멀뚱 구경만 하다가 나중에는 저희들도 흥이 올라 암토끼는 숫토끼 찾아 뛰고, 숫고라니는 암고라니를 찾아 고개를 두리번 거리고, 장끼란 놈은 까투리를 부르느라 꿩꿩 꿩 울어대는데, 중천에 있던 해는 잡놈 잡년의 노는 꼴을 눈이 시어 더는 못 보겠다는 듯이 걸음을 재촉하여 서산으로 얼굴을 숨겼는데, 두 연놈이 풍기는 양기음기가 사람이 사는 동네라고 지나쳐 갈 리가 없었다.

무슨 바람이 불었던지 계집들은 뒷물 하느라 우물물이 동이 나고 사내들은 연장을 다듬느라 손길이 바빴다.

“거참, 요상시럽소. 아까막시 밭맬 때부텀 자꾸만 아랫녁이 땡기요. 소문에 들은 깨 지리산 산내골에 천하의 잡년이 하나 들어와 산다고 하더니, 아무래도 그 년이 홍두깨 장난이라도 치는갑소. 나 얼른 한번 안아주씨요.”

“안 그래도 연장을 다듬고 있었구만. 해질녁부터 가슴이 벌떡거림서 요놈이 고개를 벌떡벌떡 쳐들드란 말이시.”

사내가 오랫만에 고개를 쳐 든 제 놈의 물건을 계집 앞에 자랑스레 내흔들었다.

“이것이 얼매만이요? 이녁의 그 놈이 시엄씨 죽고 첨으로 제대로 일 한번 헐랑갑소. 맴 변해서 죽기 전에 얼른얼른 넣어보씨요.”

“그럼세. 그럼세.”

계집이 뒤로 자지러지고, 사내가 연장을 연장통에 집어 넣는데, 다른 집이라고 두 연놈이 풍기는 음기양기에 무심할 리가 없었다. 이 집 저 집에서 이른 저녁을 먹고 찰떡방아를 찧는 소리가 철푸덕 철푸덕 담을 넘어갔다.

“흐, 저 집에서도 떡얼 치는갑만.”

“아까본깨, 김센떡이 뒷물을 헙디다.”

“사흘에 죽 한그럭 못 묵은것맨키로 히말때기가 하나도 없든디, 그래도 김센이 떡칠 심언 남아있었든갑네.”

“사내가 숨 쉴 기운만 있으면 떡언 친다고 그럽디다.”

“흐기사. 오널본깨 임자 감창소리도 제법인디.”

“이녁의 연장 다루는 솜씨가 존깨 글제요. 극락얼 두 번이나 댕겨왔소.”

“흐흐, 다행이구만. 떡치고 나면 늘 션찮타고 강짜를 부리드니, 오널밤언 편히 자게 생겼구만.”

“그냥 잘라고라? 한번 더 헙시다.“

“아서, 말어. 코에서 쌍코피 터지는구만. 밥만 많이 묵는다고 동티나는 것이 아니구만. 적당헌 것이 좋당깨. 모재란듯헐 때가 졸 때구만. 오널만 날인가?”

이 집 저 집에서 계집과 사내가 도란도란 도란거리고 있을 때였다. 지리산이 울음을 우는가, 어느 한 골짜기가 무너지는가, 아니면 마른 하늘에 뇌성벽력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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