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루지기 <455> 호색남녀 좋을시고
가루지기 <455> 호색남녀 좋을시고
  • 최정주 글,고현정 그림
  • 승인 2013.01.03 10: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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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상견례 <26>

강쇠 놈이 옹녀를 내려놓았다.

“그것이 공평허겄제요. 이년도 오며가며 사랑가 한 두마디 귀동냥헌 일이 있소. 허면 반만 업히시오.”

옹녀 년이 등을 내밀었다.

강쇠 놈이 옹녀의 어깨에 두 팔을 걸치고 업히는 시늉을 했다. 옹녀가 사내를 반만 업고 빙빙 돌며 사랑가를 내놓았다.

“사랑 사랑 내 사랑이야. 태산겉이 높은 사랑, 바다겉이 깊은 사랑. 남창북창 노적겉이 다물다물 쌓인 사랑. 은하직녀 직금겉이 올올이 맺힌 사랑. 모란화송이겉이 펑퍼져 버린 사랑.세곡선 닻줄겉이 타래타래 꼬인 사랑. 내가 만일 없었다면 호색남을 만냈을까? 서방님을 못 봤으면 이내 신세 어이할꼬. 기러기가 물을 보고 꽃이 나비를 만냈으니, 호색남녀 좋을시고, 백년화촉 밝혀보세. 해는 아직 중천이나 신방이나 꾸며보세.”

옹녀 년이 엉덩이를 들썩들썩 업은 사내를 추키는 시늉을 하자 고개를 들고 이제나 저네나 때를 기다리며 기회를 엿보던 거시기 놈이 신방을 꾸미자는 말에 신이 났던지 주인의 허락도 없이 고개를 까딱거렸다.

“임자, 청이 참 듣기 좋구만. 은쟁반에 옥구술이 굴러도 그보다 아름답지는 않을거구만.”

“이녁이 좋당깨, 나도 좋소. 헌디, 멋땜시 손구락으로 자꾸만 내 등을 찔르요? 이녁은 장난으로 글망정 당허는 이년은 겁나게 아프요.”

“손구락으로 찌르다니? 내가 헐 일이 없어 자네의 등짝얼 손구락으로 콕콕 찌르겄는가? 글고 내 손언 두 개 다 자네 눈 앞에 있잖은가?”

“허면 막대기로 찌르요?”

“막대기라니? 먼 막대기?”

“손구락도 아니고, 막대기도 아니면 도대체 멋이 내 등짝얼 찌른다요? 또 찔렀소, 또.”

“허허, 자네가 사내럴 겁나게 많이 만냈담서 말짱 거지꼴이었구만. 살몽둥이허고 손구락도 구별얼 못허는 것얼 본깨.”

“그것이 살몽둥이였소? 징허기도 허요.”

“임자껏이구만. 요놈도 오랫만에 주인다운 주인을 만냈다고 좋아서 환장얼 허고 있구만.”

“그놈이 좋당깨, 이년도 좋소. 허면 속궁합이나 한번보까요?”

“그러세나?”

말끝에 강쇠 놈이 옹녀 년을 돌려세워 입부터 한번 쭉 맞추었다. 계집이 스르르 주저 앉아 강쇠 놈의 살몽둥이를 붙잡고 요리보고 저리보다가 입을 한번 쭉 맞추고는 불그죽죽한 민대가리에 볼을 부벼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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