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루지기 <453>얼렁 보듬아 주씨요
가루지기 <453>얼렁 보듬아 주씨요
  • 최정주 글,고현정 그림
  • 승인 2013.01.02 16:5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9. 상견례 <24>

"이상허게도 생겼구나. 맹랑허게도 생겼구나. 늙은 중의 입일런가? 털은 돋았는디, 이는 없구나. 소나기를 만냈던가, 언덕이 깊숙히 파였구나. 콩밭 팥밭 지냈던가? 돈부꽃이 불그죽죽 피었구나. 도끼날을 맞았던가? 금바르게 쪼개졌구나. 생수 솟는 옥답인가, 물은 항상 괴어 있구나. 무신 할말이 그리 많아 움찔움찔 하고 있는가? 천리길을 내려오다 주먹 바위 신통허고, 만경창파에 조개인가, 혀를 낼름 ?물었으며, 임실곶감 먹었는가, 곶감씨를 달았으며, 첩첩산중 으름인지 절로절로 벌어졌구나. 영계탕을 먹었는가, 닭의 벼슬 솟아있고, 명당을 허물었는지 더운김이 아직도 나는구나. 제 무엇이 즐거운지 반쯤 웃고 수줍었구나. 곶감 있고, 으름 있고, 조개 있고, 영계 있으니, 안주상으로는 그만이구나.“

사내의 눈빛에 눈이 부셨는지, 아니면 고개를 까딱거리는 대물의 장난질에 정신이 혼미해졌는지, 옹녀 년의 조갯살이 혀를 낼름 입을 벙긋, 침을 다시다가 혀를 잘못 놀렸는지 침 몇 방울이 질금질금 흘러내렸다.

계집의 급한 속내를 모른 것은 아니었지만, 살방아부터 찧고 나면 긴긴 밤이 심심할 것 같아 맛 있는 것은 아껴둔다는 심사로 강쇠 놈이 옹녀 년을 일으켜 앉히고는 등을 내밀었다.

“등은 왜 내미시오? 벌건 대낮에 업고 놀자는 소리요?”

“업고 놀자는 소리여.”

“업고 놀기넌 싫소. 보듬고 놀고 싶소. 얼렁 보듬아 주씨요.”

“쇠털겉이 많은 날이구만. 해도 안즉 중천이고. 급헐 것이 멋이당가? 서로간에 절했고, 깊이깊이 숨겨 둔 것얼 대명천지 밝은 날에 꺼내놓고 볼 것 다 보고, 인자넌 속궁합 보는 일만 남았는디, 존 것언 애꼈다가 서나서나 허드라고. 우선언 업고 놀아보자고..”

“설마 살방애 찧고나면 고태골로 가까싶어 겁이 나서 그러는 것언 아니제요?”

“그럴리가 있는가? 고태골로 가는 것언 하나도 안 무섭구만. 하루 이틀 살 우리도 아닌디, 급헐 것이 없어서 글만. 어서 업히랑깨. 내가 먼저 업어줄랑깨.”

강쇠 놈이 돌아보았다.

“좋소. 흐기사 이년이 수없이 많은 사내럴 만냈어도 업고 노는 것은 또 첨이요. 그것도 재밌겄소.”

옹녀 년이 하늘을 향해 흐 웃다가 사내의 등에 몸을 실었다.

강쇠 놈이 벌떡 일어나 덩기덩기 깝죽거리며 느닷없이 사랑가 한 대목을 흥얼거렸다.

“사랑사랑 사랑이야. 유방나매 포사나고, 걸이 나매 말희 나고, 주왕나매 달기나고, 오왕부차나매 월나라 서시나고, 명황나매 귀비 나고 여포나매 초선이 나고, 호색남자 변강쇠 나매, 호색계집 옹녀가 낫구나.”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