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루지기 <450>언제 찧어도 찧을 살방앤디
가루지기 <450>언제 찧어도 찧을 살방앤디
  • 최정주 글,고현정 그림
  • 승인 2013.01.01 14: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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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상견례 <21>

“내가 고태골로 간다고요? 임자허고 아랫녁 한번 맞춘다고 고태골로 갈 것 같앴으면 펄쌔 열번언 더 갔을 것이요. 넘의 것만 만지작거리지 말고 임자도 치매한번 걷어 보씨요. 서로간에 인사넌 시켜야헐 것이 아니요.”

“이년도 글고 싶소. 헌디 참 이상시럽기도 허요. 이년이 좋다고 물불 안 개리고 뎀벼드는 사내헌테 애잔헌 맴이 한번도 없었는디, 이녁헌테넌 자꼬만 애잔헌 맴이 드요. 아깐 생각이 드요. 나허고 살방애 한번 찧으면 고태골로 갈 것은 뻔헌 사실인디, 고태골로 안 보내고 농사라도 짐서 함께 살고 싶소.”

“아짐씨, 젊으나 젊은 우리 둘이 살방애도 안 찜서 한 이불 덮고 살 수 있겄소? 언제 찧어도 찧을 살방앤디, 시방 찧어 뿌립시다.”

강쇠 놈이 계집을 바짝 끌어당겨 안고 손 하나를 슬며시 아랫녁으로 가져 가는데, 옹녀 년이 매정하게 뿌리치고 엉덩이 짓으로 반발 남짓 물러 앉으며 다시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런 계집의 눈가에 이슬이 맺혀 있어 이상하게 여긴 강쇠 놈이 정색을 하고 물었다.

“내가 싫소? 혹시 집에 서방님이라도 숨겨놓고 나온 것이 아니요? 서방님의 살방애가 성에 안 차던가요? 그래서 샛거리라도 묵을라고 나왔는디, 막상 헐라고 본 깨 겁이 나요? 서방님 볼 낯이 없어서 그요? 허면 관둡시다. 이놈도 임자 있는 계집언 싫소. 자칫 서방있는 계집 잘못 건드렸다가 관아에 끌려 가 곤장맞기 싫소.”

“아니요. 아니요. 그래서가 아니요. 이년의 말을 들어보씨요. 이년의 말을 듣고도 나허고 합궁을 원헌다면 응해주리다. 치매를 올리고 속고쟁을 벌려주리다.”

옹녀 년의 눈에서 눈물 한 방울이 기어내려왔다.

그런 계집의 태도가 이상하기는 했지만 강쇠 놈이 귀를 기울이는 체 했다.

“이녁은 들어보씨요. 이년이 만내는 사내마다 고태골로 갔다고 헌깨, 그 말을 안 믿소만, 묵잘 것도 없는 일에 멋 땜시 거짓꼴얼 헌다요? 이 년의 신세가 꼭 이렇소. 열 다섯에 얻은 서방은 첫날밤에 급상한으로 죽고, 열 여섯에 얻은 서방은 당창병에 죽고, 열 일곱에 얻은 서방은 용천병에 죽고, 열 여덟에 얻은 서방은 벼락맞아 죽고, 열 아홉에 얻은 서방은 비상 묵고 죽고, 스무살에 얻은 서방은 숨을 못 쉬어 죽었으니, 만내는 사내마다 오감진 재미도 못 보고 고태골로 갔소. 그렇다고 이년이 그리 많이 시집을 갔다는 소리가 아니요. 말얼 허자면 사내들이 그리 많이 죽었다는 것이제요. 본서방도 죽고, 기둥서방도 죽고, 여편네 있는 이웃집 가장도 죽고, 입 한 번 맞춘 놈도 죽고, 눈흘레 한 놈도 죽고, 심지어는 손 한번 잡은 놈도 죽었소. 내 이력이 이래도 안 무섭소? 내 치매끈얼 풀고 싶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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