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에는 무한한 상상을 꿈꾸는 화가처럼…
새해에는 무한한 상상을 꿈꾸는 화가처럼…
  • 이흥재
  • 승인 2012.12.28 18: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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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 있어 삶과 예술에 의미를 주는 단 하나의 색은 바로 사랑의 색이다.”라고 말한 샤갈의 『모성애』라는 작품은 성탄절에 잘 어울리는 작품인 듯하다. 몬드리안의 『빨강, 노랑 그리고 파랑의 구성』은 왠지 우리의 동지와 잘 어울린다는 느낌이 들었다. 빨강, 노랑, 파랑 그리고 하얀 바탕을 가르는 검정색 수평선과 수직선은 우리의 전통색인 오방색과 매우 유사하다는 생각이다. 이것은 이 세상 본질적인 조형으로 수평선은 여성적이고 편안함을, 수직선은 남성적이며 힘이나 움직임을 나타낸다. 빨강, 노랑, 파랑에 흰색과 검정의 색채 심리는 우리의 것들과 맞닿아있다는 생각이 든다. 호안미로의 『찬란한 태양』과 『반짝이는 달』은 그야말로 동양의 음양을 그대로 반영한다고 볼 수 있다. 이렇듯 서양의 예술작품들 속에서도 우리의 전통문화나 익숙한 생활 속 의미들을 찾아볼 수 있다는 것이 흥미롭다.

장 뒤뷔페의 『시선의 계단』을 집에 걸어두면 왠지 꿈자리가 사나울 것 같다고 얘기하는 분도 있지만 사실 그는 “미술은 눈을 즐겁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마음에 있는 무언가를 전달하기 위해 있는 것이다”라는 말을 했다. 300호의 커다란 크기와 강렬하고 낙서 같기도 한 거친 선들로 이루어져 관객들의 시선을 압도한다. 어린아이들이 무심코 휘갈긴 낙서 같은 그림들을 각각 다른 종이 위에 그린 뒤 오려붙인 작품을 보고, 저렇게 못 그린 그림이 어떻게 세계미술사에 남은 거장의 작품이냐고 반문하기도 한다. 장 뒤뷔페는 41세의 불혹의 나이로 작가활동을 시작한 이래 일부러 서툴게 그린 그림처럼 보이거나 혹은 장난처럼 그린 듯 아무렇게나 칠한 저속하고 추한 모습 때문에 화단의 주목을 받으며 유명해진다. 20세기 초 유럽은 전쟁으로 인해 빈곤과 불안감 그리고 허무주의가 팽배하였다. 모든 분야에서 기존의 질서가 해체되고 사회가치에 대한 비판과 기존이념에 대한 변화가 ‘앵포르멜(informal)’이라는 전후 유럽 추상회화의 한 흐름의 중심에 장 뒤뷔페가 있었던 것이다.

루치오 폰타나의 『공간개념』 앞에서 많은 관람객은 당혹해 한다. 흰색 캔버스에 날카로운 면도칼로 3번 죽 그어댄 작품이 10억을 넘게 호가한다는 말을 듣고는 모두 깜짝 놀라는 표정들이다. 이런 것도 예술작품인가? 그렇다면, 우리가 화방에서 캔버스를 사다가 저렇게 칼로 3번 그어 액자로 해서 내놓으면 10억을 받을 수 있단 말인가? 안된다면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는 끊임없이 기존의 반복된 개념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도를 할 때 무수한 비난의 화살을 면하지 못한다. 하지만, 처음의 논리들을 끝까지 설득력 있게 끌고 간다면 새로운 한 장을 열어나가게 되는 것이다. 기존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맴돌기만 한다면 전혀 새로운 세상을 열어갈 수 없다. 남들이 생각지 못한 상상력을 새롭게 작품으로 구현해내기가 그만큼 어렵다. 폰타나는 캔버스를 찢거나 구멍을 내는 작업인 공간개념을 의미화 시키는데 20여 년의 노력을 했다. 단 3개의 칼자국을 내는데 총 30여 년이 걸린 것이다. 그가 구현한 공간주의는 르네상스 이래 400여 년간 절대적으로 신봉 되어온 원근법 등 공간의 깊이를 만들어내는 눈속임의 전통적인 방식을 거부하고, 회화라는 2차원의 평면을 입체적인 회화로 만들고자 했던 것이다. 그는 작품에 어떤 형상을 그려내기보다는 자신의 신체적 행위를 고스란히 남겨 정신성을 강조했고 이런 행위가 미술작품의 영원성을 얻을 수 있다고 했다.

요셉 알버스의 『정사각형에 대한 오마주』 또한 50억 이상의 가격을 호가한다. 171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프랑스의 세계적인 명품 에르메스에서는 그의 ‘정사각형에 대한 오마주’를 이용한 실크 스카프를 400만원에 내놓기도 했다. 그는 색상들이 서로 어떤 영향을 미치고 어떻게 변화하는지 색채간의 영향과 그 효과를 지속적으로 연구했다. 요셉 알버스에게 사각형이라는 틀은 작가의 심리상태라든가 실제 세계를 반영하기보다는 색의 다양한 측면을 가장 잘 보여주는 색채의 교과서였다. 우리는 백화점 쇼윈도의 디스플레이나 거리의 현란한 간판에서도 그의 색채이론을 실감한다. 사실 우리가 매일 입는 옷이나 액세서리도 그 영향을 받는다. 사람들이 체형이나 피부색에 따라 디자인이나 색상을 선택하는 것이 바로 그의 색채 이론의 바탕에서 시작한다.

우리는 한해를 마무리하며 작가들처럼 깊이 있는 창의력을 가지고 20~30여 년씩 어떤 문제를 해결하고자 집요하게 매달려 살아왔는지 되돌아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새해에는 좀 더 조화로운 색상의 삶 속에서 무한한 상상력을 꿈꾸게 하는 새로운 삶이 이루어지길 희망해본다. 세계미술거장전에서 그 단서들을 찾아봄은 어떨까?

이흥재<전북도립미술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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