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루지기 <446>우선언 저놈이라도 잡아묵어보까
가루지기 <446>우선언 저놈이라도 잡아묵어보까
  • 최정주 글,고현정 그림
  • 승인 2012.12.27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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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상견례 <17>

그것은 이날도 마찬가지였다. 더구나 손에 물집이 잡히도록 괭이질을 해도 아랫녁의 더운기는 가시지 않았다.

'미치제. 이러다가는 내가 미치고 말제. 산내골에 들어온지 인자 제우 열흘 남짓인디, 앞으로 어찌살꼬? 차라리 운봉이나 인월의 주막으로나 찾아가보까?'

인월 나가는 길을 한참동안 바라보던 옹녀가 벌떡 몸을 일으켜 계곡으로 달려갔다. 멍석만한 바위 위에 옷을 훌훌 벗어놓고 물 속에 풍덩 뛰어들었다. 눈 녹은 시린 물이 뼛속 깊이 스며들며 아랫녁의 불을 껐다.

그러나 혼자 끄잔다고 꺼지는 불이 아니었다. 찬 기운에 잠시잠깐 꺼진체 할 뿐 꺼지는 것이 아니었다. 물 밖으로 나와 봄햇살에 뜨뜨미지근해진 바위에 몸을 눕히고 하늘바래기를 하자 아랫녁이 후꾼거렸다.

'어쩌자는 것이여? 어쩌자는 것이여. 눈에 진물이 생기도록 둘러봐도 사내라고는 씨도 없는 걸 어쩌라는 것이여?'

벌떡 몸을 일으킨 옹녀 년이 주먹으로 말 안 듣는 어린 것을 쥐어박는 시늉으로 아랫녁을 쿡쿡 쥐어박았다.

'이것아, 뒈져라. 차라리 뒈져뿔그라. 니가 잡아 묵은 사내가 한 둘이냐? 너 땜이여. 니가 생기는 족족 사내럴 잡아 묵어뿐개, 사내가 안 생기는 것이여.'

옹녀가 주먹으로 제 아랫녁을 뒈져라, 뒈져라, 하면서 쿡쿡 쥐어박고 있을 때였다.

사내 하나가 사타구니 사이의 방울 두 개가 덜렁거리도록 빠른 걸음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까치집 형상의 상투를 틀어올린 걸로 보아 총각 놈은 아니었다. 어깨에 괴나리 봇짐을 하나 달랑 메고 있는 폼이 먼 길 심부름이라도 다녀오는 양반집의 종 놈 행색이었다.

‘아랫녁에서 열불이 나는 판인디, 우선언 아쉰대로 저놈이라도 잡아묵어보까? 시장기라도 면해보까?’

옹녀 년이 혼자 중얼거리는데 느닷없이 아랫녁이 후꾼 닳아 올랐다. 그것도 사내의 대물을 앞에 놓고 입안에 침이 고일 때 만큼이나 뜨겁게 닳아올랐다. 거 참, 별 일이라고 생각하며 옹녀 년이 치마를 걷어 올린 채 아랫녁을 쿡쿡 쥐어 박았다.

“이것아, 이 속창아리 없는 것아. 내가 그런다고 너꺼정 덩달아 껄떡거리면 어뜩허냐? 어떤 계집언 한 사내럴 만내면 일부종사로 한 평생얼 사는디, 너넌 어찌허여 만내는 사내마다 잡아 묵느냐? 첫정을 준 서방님이야 워낙이 병골이라 그렇다고 치드래도 니가 잡아 묵은 사내가 어디 한 둘이더냐? 거지 왕초에, 색 밝히는 한량에, 간살시런 이방놈에, 연재 도둑놈에, 운봉 이부자꺼정 잡아 묵은 사내가 두 손구락 두 발구락으로는 셀 수가 없구나. 징그럽다, 징그럽다. 징그러워 못살겄다. 그럼서 또 껄떡증을 내냐? 사내놈헌테 허천이 나서 쎄바닥얼 낼름거리고 있냐? 뒈져라. 뒈져라. 차라리 뒈져뿔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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