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루지기 <445>양다리 사이에 작은 다리 하나
가루지기 <445>양다리 사이에 작은 다리 하나
  • 최정주 글,고현정 그림
  • 승인 2012.12.26 16: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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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상견례 <16>

그제서야 주모의 얼굴이 활짝 풀어졌다.

"안 주고 그냥 가는가했는디, 주고가네. 영 싸가지 없는 계집은 아니었네."

"이 년이 그리 속 좁은 년언 아니구만요. 잘 있으시요. 혹시 운봉 나오는 길이 있으면 찾아올라요."

"그러소, 그러소. 앞으로도 우리 친성제간맨키로 내왕험서 살세."

주모가 손을 잡았다. 그리고 작은 소리로 속삭였다.

"헌디, 적적해서 어찌 살라는가? 내가 자네를 아는디, 허다못해 비쩍 마른 막대기라도 하나 붙잡아야 잠이 드는 자네를 아는디, 그 골짝에서 어찌 살라는가?"

"그런다고 아랫녁에 거미줄이사 치고 살겄소. 사람사는 세상에 어찌 사내가 없겄소."

"흐기사, 눈치만 있으면 절에 가서도 새우젓을 얻어묵는다고 했응깨, 눈 크게 뜨고 보면 사내가 없겄는가?"

"아짐씨 말씸이 옳구만요. 나 가볼라요."

"잘 가소. 혹시 쓸만헌 사내가 나타나면 내가 한 놈 보내줌세."

"그러든지요."

그렇게 운봉 주막의 주모를 작별하고 한나절을 걸려 산내골 초가집에 짐을 풀었는데, 쌀 두가마를 마루에 내려놓고는 뒤 한 번 안 돌아보고 박서방이 돌아가버리자 눈을 씻고 사방을 둘러봐도 사내라고는 그림자도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아니, 어느 사이에 사내 잡아 먹는 계집이라는 소문이 났는지, 어쩌다 만나는 아낙들조차도 침을 퉤퉤 뱉으며 고개를 외로 꼬고 다녔다.

'흐, 저런 썩을년덜 좀 보소요. 사람얼 아예 축생보듯이 보네이. 문둥이 대허듯이 대허네이.'

사람들이 피할수록 옹녀는 사람이 그리웠고, 사내들이라고는 그림자도 비치지 않자 사내들이 못 견디게 그리웠다. 혹시나 싶어 날이 새면 앞산 뒷산 건너산을 찾아다녀도 양다리 사이에 작은 다리 하나 더 가진 사내는 눈에 띄지 않았다. 그럴수록 옹녀의 가슴에서는 벌떡증이 났다. 밥을 먹어도 먹은 것 같지 않고 잠을 자도 잔 것 같지 않았다. 삭신이 노곤거리도록 일이라도 하면 나을까 싶어 텃밭도 파보고, 산에 나무를 가서 고개가 비틀어지도록 나무동을 해서 이고 와도 밤이면 눈만 말똥거려지는 것이었다.

더구나 산과 들에 봄이 와서 암컷 수컷들이 짝을 찾아 울어대고 감창소리 요란해지자 웃녁 아랫녁이 함께 활활 타면서 사람이 미치고 환장하겠는 것이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앞개울에 나가 아직은 차거운 골짝물에 몸을 담그어도 그때 잠시 뿐, 입에서 더운 기운이 확확 뿜어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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