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천명(知天命)의 선택
지천명(知天命)의 선택
  • 조미애
  • 승인 2012.12.25 1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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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대 대통령선거가 끝나고 대한민국 첫 여성대통령을 탄생시킨 원동력을 ‘50대의 힘’이라고들 한다. 공자는 나이 열다섯을 지학志學 서른 이립而立 마흔 불혹不惑 쉰 지천명知天命 예순 이순耳順 일흔 종심從心이라 하셨으니 세상의 이치를 순리에 따르는 지천명의 세대가 선택한 결과라고 할 수 있겠다. 이번 선거에서 50대 이상의 유권자가 차지하는 비율은 40%였다. 진보는 동적인 흐름 속에서 변화를 추구하는데, 대통령 만들기에 실패한 민주당은 변화에 민감한 2030세대에 집중하느라 선거인 수가 많고 내면에 동적인 운동량이 큰 50대 이상의 마음 읽기를 간과한 것이라 생각한다.

사람들은 자주 합리적으로 판단하지 않는다는 것을 심리학자 대니얼 카너먼(Daniel Kahneman)과 아모스 트버스키(Amos Tversky)는 실험을 통해 보여준 바 있다. ‘아시아질병 문제’라는 이름으로 행동경제학에서 회자되는 실험에서 같은 문제를 서로 다른 방식으로 제시했을 때 사람들의 선택 또한 전혀 다르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미국 방역 당국은 정글 모기가 퍼트리는 신종 전염병 발생에 대해 이를 방치하면 600명이 목숨을 잃을 것으로 예상했다. 이에 대한 대응으로 두 가지의 방법이 제안되었다. ‘제1안을 따르면 200명이 살게 된다. 제2안을 따르면 600명이 다 살 확률이 1/3, 아무도 살지 못할 확률이 2/3다.’ 응답자 대부분은 제1안을 선택했다. 200명의 목숨을 확실히 구할 수 있는 제1안보다 결과가 불확실한 제2안을 꺼리는 위험회피(risk aversion)성향을 보여준 것이다.

그런데 같은 내용을 다음과 같이 바꾸어 다시 물었다. ‘제1안에 따르면 400명이 죽는다. 제2안에 따르면 아무도 죽지 않을 확률이 1/3, 600명이 다 죽을 확률이 2/3다.’ 이번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제2안을 선택했다. 400명이나 확실히 목숨을 잃는 것보다는, 가능성은 낮지만 모두를 살릴 수도 있는 모험을 택하겠다는 뜻이다. 위험회피적이던 응답자들이 갑자기 위험추구(risk seeking)성향으로 바뀐 것이다.

이처럼 대안을 어떻게 제시하느냐에 따라 선택이 달라지는 것을 프레이밍효과(framing effect)라고 한다. 첫 번째 물음에서 200명을 확실히 살리는 제1안을 택한 것이 합리적인 선택이었다면 두 번째 물음에서도 같은 제1안을 선택해야 합리적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합리적이고 이성적으로 판단하여 선택하지 않고 있다.

교육을 받은 사람은 교육을 받지 않은 사람에 비해 당연히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판단을 할 수 있다고 본다. 2012년 OECD 교육지표에 의하면 우리나라 국민 중에서 25세부터 64세 성인의 고등학교 이수율은 80%이고 대학교육을 마친 25세부터 34세의 청년층은 65%나 된다. 교육을 받은 냉철한 이성의 소유자인 사람들이 어느 순간 감정에 휘둘려 변덕스럽고, 충동적이고, 근시안적이고, 셈에 서투르고, 자기 과신에 빠져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저지르기도 한다.

선거가 끝나고 나면 승자는 승자대로 패자는 패자대로 승패의 원인을 보다 분명하게 분석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이러한 경우에도 우려되는 점은 같은 증거에 대해서 각자의 성향에 따라 정반대로 해석하는 두 사람의 확인편향(confirmation bias)이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사형제도를 찬성하는 갑동씨는 ‘사형이 범죄를 억제하는 효과가 있는지에 대한 연구보고서’를 읽고서 자신의 견해가 더 확고해졌다고 믿는다. 사형제도를 반대하는 을동씨 역시 같은 보고서를 읽고서 자신의 견해가 옳았음을 더 확신한다는 것이다.

많은 정치평론가들이 선거과정에서 박빙의 상태에 대해 천심 운운 하면서 본인들은 결과를 알 수 없고 하늘만이 알 것이라고 했는데, 그것은 공자가 말한 하늘의 뜻을 안다는 지천명을 말한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공자의 지천명이란 나이 오십이 되면 세상을 보는 경륜이 풍부해지고 하늘의 뜻을 거스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 이후에야 상대방의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가려져 귀가 순해지고 결국 어떤 일에 대해 마음 가는대로 움직여도 법도에 어긋나지 않게 된다는 것이 아니겠는가.

<조미애 詩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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