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루지기 <439>양반이 씨럴 가졌으면
가루지기 <439>양반이 씨럴 가졌으면
  • 최정주 글,고현정 그림
  • 승인 2012.12.23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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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상견례 <10>

"그래서 아새끼가 들어섰는가 어쨌는가 지달리겄다는 것이여? 꿈도 크구만. 이집 주인 양반이 씨럴 가졌으면 내가 아새끼럴 나도 펄새 열 놈언 났겄구만. 내가 이래도 달거리넌 꼬박꼬박 헌다고, 내가 비록 이 집에 씨받이로 들어와서 씨넌 못 받고 부억데기로 살고는 있었제만, 혹시나 싶어 때가 오면 꼬박꼬박 씨럴 받았다고. 한번도 싹이 안 났구만. 니년의 밭이 무신 특별시런 밭이라고 내 밭에 안 난 싹이 난다냐? 애당초 글렀응깨, 초상이나 치루거든 쥐도 새도 모르게 없어지는 것이 상책일 것이구만. 초상 끝나면 니년도 잡아 죽이겄다고 문중 사내들이 몽둥이 들고 나설 것이여."

섭섭이네의 말에 옹녀도 따는 그렇겠다 싶었다. 지금은 초상을 치루느라 이천수의 마누라도 가만히 있지만, 급한 불을 끄고나면 어찌 나올지 모를 일이었다. 문중 사내들이 몽둥이 들고 설친다면 꼼짝없이 맞아야할 것이며 이천수의 마누라가 머리채를 잡는다면 또 하소연 한번 못하고 잡혀주는 수 밖에 없을 것이었다.

'흐, 그런다고 호락호락 당헐 줄 알어? 사람이 목심이 아까울 때 무선 것도 있는 벱이제, 목 심 하나 내놓고 나면 세상에 무설 것이 없당깨. 헌디, 참말로 사내들이 몽둥이로 무지막지 패뿌리면 어찌허제? 차라리 암도 모르게 줄행랑을 쳐뿌리까? 섭섭이 아줌니 말대로 담이라도 넘으까?"

하루에도 열두번씩 마음이 바뀌었다. 이럴까하면 저것이 걱정이고, 저럴까햐면 이것이 걱정이었다.

'하이고. 아깔 것도 없는 목심, 한번 죽제 두 번이사 죽겄냐.'

옹녀가 입술 악물면서 닷새를 버티고 난 다음날이었다. 섭섭이네가 찾으러 왔다.

"먼 일이요? 아침언 아까막시 갖다줘서 묵었는디."

올 것이 왔구나, 싶으면서도 옹녀가 무심한 낯빛으로 물었다.

"마님이 찾으신구만."

"이년얼 쫓아낸다고 헙디까?"

"모르제. 어뜨케 헐티여? 참말로 씨럴받았는가, 안 받았는가 지달리겄다고 헐 티여?"

"어쨌으면 좋겄소? 내가 있겄다고 허면 있으라고 허까요?"

이미 마음으로 단단히 각오를 다지고 있던 옹녀가 지나가는 말로 물었다.

"그것이사 니 년 맴이제. 마님 등쌀을 이겨묵을 자신이 있으면 그래 보든지."

"자기 못 잇는 손얼 이서줄지도 모르는디, 설마 매정허게 쫓아내기야 허겄소?"

섭섭이네와 그런 말을 나누면서 안방으로 가자 소복 차림의 이천수 마누라가 눈으로만 흘끔 올려다 보았다.

"왜 불렀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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