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루지기<437>황천길 혼자 가기 심심타고
가루지기<437>황천길 혼자 가기 심심타고
  • 최정주 글,고현정 그림
  • 승인 2012.12.20 16: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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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상견례 <8>

섭섭이네한테는 처음부터 당차게 나가야 뒷소리를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 옹녀가 문풍지가 쩌렁쩌렁 울리도록 마주 고함을 쳤다.

"니 년이제? 니 년이 쥑였제?"

섭섭이네가 마루 끝에 엉덩이를 걸치고 앉으며 이번에는 은근히 물었다.

"이년허고 자다가 이 년의 배 우에서 돌아가셨응깨, 이 년 탓이 전연 아니라고는 말얼 못허제요. 허나 씨 하나 받겄다고 헌디, 나넌 가만히 있었는디 그 양반이 혼자서 깔짝거리다가 고개를 꼬는디, 내가 어쩐다요? 억울허고 원통헌 것언 이 년이요.

그리 허깨비겉은 사낸 줄 알았으면 천금얼 준다고해도 내가 싫다고 했을 것이요. 만금얼 준다고해도 어찌 가마럴 탔겄소."

옹녀가 한숨까지 푹 내쉬었다.

"주인 양반이 아니고 대성양반 말이여, 대성 양반."

섭섭이네가 눈을 빤히 뜨고 찬찬히 살피며 내뱉았다.

"대성양반이요? 그 양반이 누구다요?"

가슴이 쿵 내려앉고 입술이 바짝바짝 탔으나 옹녀 년이 짐짓 모른 체 되물었다.

'기언시 죽었는갑구나. 나 혼자 헛공사 했는갑구나. 잠도 못 자고 혼자서 지은 기와집이 와르르 무너졌는갑구나. 그것도 살방애라고, 토?이 새끼 멋 허드끼, 몇 번 깔짝거린 그것도 살방애라고 죽어뿌리고 말았는갑구나.'

그런 생각이 머리 속을 흘러갔으나 옹녀 년이 시치미를 뚝 떼자 섭섭이네가 고개를 갸우뚱 거렸다.

"니 년이 아니여? 대성양반을 쥑인 것이 니 년이 아니냐고?"

"아, 대성양반이 누구냔깨요? 자다가 봉창얼 뜯는 것도 유만부득이제, 알도 못허는 대성양반얼 내가 쥑였다니요? 먼 소리요?"

"대성양반이 머리가 어지럽담서 집에 좀 댕겨온다고 나갔다가 길바닥에 머리를 쳐박고 죽어있드랑구만. 코에서 피럴 한 말이나 쏟아놓고 죽었다능구만. 아직은 세상을 살아도 한참을 더 살아야헐 장정 하나가 간다는 말도 없이 하늘로 가뿌렀다능구만."

섭섭이네가 말끝에 코를 텡 풀어 제꼈다. 그렇다고 이상한 낌새를 보일 옹녀 년이 아니었다. 자칫 헛점을 보였다가는 섭섭이네가 하루 밤에 두 사내를 잡아 먹은 계집이라고 동네방네 떠들고 다닐지도 모를 일이었다.

"이 집 주인 양반이 황천길 혼자 가기 심심타고 델꼬 갔는갑소. 그래서 쌍초상이 났는갑소. 어깨 애먼 사람 잡지 마씨요. 안 그래도 시방 내가 허퉁시러워서 못 살겄소. 애먼 사람헌테 누명얼 씌우면 이년도 죽자살자요. 아짐씨, 내 성깔 알제요? 머리카락 온전히 냄겨둘라거든 씨잘데기 없는 소리말고 얼릉 가보씨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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