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룩의 운동메커니즘
벼룩의 운동메커니즘
  • 김인수
  • 승인 2012.12.20 15: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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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게놈지도 초안이 완성된 지 10돌이 지났다. 하지만 기적의 묘약이나 개인 맞춤형 신약은 등장하지 않고 있다. 한 유전자가 하나의 단백질을 만들 것이라는 가설은 깨졌다. 정크 디엔에이(DNA)는 더 이상 쓰레기가 아니다. 유기체는 디엔에이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컴퓨터가 아니었다. 과학자들은 반성했다. 이제 유기체는 거꾸로 디엔에이에 의해 조정되는 역동적인 시스템으로 이해되기 시작했다. 생물학이 디엔에이·단백질 등 미세 연구의 한계에 부닥치면서 수학적 모델에서 해답을 찾으려는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지네의 신경체계가 어떻게 조직화했는지 방정식을 세워 소와 말의 다리들이 어떻게 조화롭게 움직이는지를 유추하는 식이다. 생물수학은 미국 국립보건원이 해당 연구센터에 1억달러를 투자할 정도로 주목도가 커졌다.

작년 2월에는 44년간 미스터리로 남아 있던 벼룩의 운동 메커니즘이 수학 모델에 의해 밝혀지기도 했다. 벼룩은 초당 약 1.9미터의 빠른 속도로 점프를 한다. 1967년 헨리 버넷 클락이라는 과학자는 벼룩이 점프하기 위해 탄성과 관련된 유일한 단백질인 레실린으로 구성된 패드에 에너지를 저장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런 폭발적인 에너지를 어떻게 저장하는지에 대해서는 지금까지도 많은 논쟁이 있어왔다. 과학자들이 각자의 경쟁적인 가설을 제시했지만, 명쾌하게 해결하지는 못했던 것이다. 그런데 캠브리지 대학 연구팀이 초고속 저장 장치와 고도의 수학 모델을 이용해 벼룩이 발가락으로 바닥을 밀고 점프하여 공기 중에서 헤엄치듯 발을 회전시킴으로써 그와 같은 경이로운 점프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연구팀은 벼룩이 어두운 곳에서는 완벽하게 정지하고 있다가 빛이 들어오는 순간에만 점프를 한다는 점을 이용해 10마리의 벼룩에서 총 51번의 점프 영상을 얻었다. 그 후 벼룩의 이동 궤적을 재현할 수 있는 수학적 모델을 이용해 벼룩이 흉부의 탄성을 타르수스(벼룩의 발가락에 해당하는 부위)를 당기는 지렛대 역할을 하는 다리 부분을 통해 전송한다는 것을 확인함으로써 44년간 지속된 벼룩의 운동 메커니즘에 대한 오랜 미스터리를 풀었다.

지난 4월에는 영국 노팅엄대학교 연구진이 수학적 모델링을 이용해 지베렐린이 식물 성장에 어떻게 작용하는지 이해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는 성과를 올리기도 했다. 지베렐린은 뿌리에서 꽃과 잎에 이르기까지 식물체 전반의 발달에서 핵심적인 부분을 담당하는 호르몬이다. 이 호르몬은 식물체 내의 복잡한 분자 네트워크 안에서 작용해, 외부 환경에서 오는 신호를 식물체 내의 반응으로 바꿔 식물체가 적응하고 살아남을 수 있게 한다. 연구진은 지베렐린 신호전달 네트워크가 뿌리 성장을 어떻게 조절하는지를 조사하는 데 수학적 모델링을 이용한 결과, 빠르게 팽창하는 세포에서 지베렐린이 희석되는 현상으로 성장이 최종적으로 정지되는 이유를 설명할 수 있었다.

한편 인간과 두 가지 다른 종류의 고래만이 겪는 폐경기의 수수께끼에 대해 수학적 모델로 설명하는 연구결과가 2010년에 발표됐다. 수명이 긴 동물들 중에서 폐경(肺經)을 겪는 동물로 현재까지 세 가지 종이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폐경은 난소에서 난자가 소멸될 때 발생하는 것으로 여성의 생식력이 끝나는 것을 의미한다. 진화를 위해서는 자손을 계속 생산하는 것이 도움이 되는데 왜 이 종들은 자손의 생산을 자신의 생명이 다하기 훨씬 이전에 포기하는 것일까. 인간의 폐경에 대해 몇몇 연구자들은 ‘할머니 가설’이라는 이론을 제시한다. 이 가설은 나이가 많은 여성의 경우 자신의 유전자를 물려받은 손자, 손녀들이 살아남는 것을 자신이 자녀를 낳는 것보다 우선시한다는 이론이다. 역사적으로 여성은 혼인 이후에 자신의 가족들과 헤어지므로 인간은 다른 생물체보다 폐경에 대한 인식이 높다고 설명된다. 새로운 가정을 형성한 후 낳은 자녀들과 손주들은 혼인 이전의 가족들보다 유전적으로 자신과 더 많은 연관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설명은 두 종류의 고래들이 폐경을 겪는 이유에 대해서는 명쾌한 해답이 되지 못한다. 왜냐하면 두 종류의 고래들은 짝을 이룬 후에도 가족 집단을 떠나지 않고 자신의 집단으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연구진은 특이한 짝짓기 패턴을 가지는 집단에서 친족에 관한 역동성을 설명하는 수학적 모델을 제시했다. 즉, 고래들의 짝짓기 패턴은 암컷이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자기 집단에서 개체 수가 증가하는 것을 초래해 나이가 어린 암컷은 자녀를 생산하고 나이가 많은 암컷은 자녀를 보살피는 경향을 형성하게 됐다는 것이다. 이 같은 수학 모델은 혼인 이후에 남편의 가정에 소속되는 인간에 적용했을 때도 같은 패턴으로 얻을 수 있다. 이것은 혼인 이후 보통 수컷이 자기 가족을 떠나는 포유류의 사회성과는 크게 다른 점이다. 하지만 이 수학 모델은 폐경의 유무가 다윈의 진화론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는 설명하지 못하므로, 생물의 종에서 친족 간의 관계를 설명하는 수학 모델을 통해 폐경을 해석한 이 연구결과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을 보이는 이들도 많다.

<이학박사 김인수, 호남수학회장, 대한수학회 부회장, 전북대학교 자연과학대학 수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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