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루지기 <432>아랫녁 물건은 생기다가 말았네
가루지기 <432>아랫녁 물건은 생기다가 말았네
  • 최정주 글,고현정 그림
  • 승인 2012.12.18 16: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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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상견례 <3>

 

"저런 요망헌 년, 이보게, 저 년을 당장 끌어내리게. 단매에 요절을 내뿌리세."

조금 전에 논문서부터 찾아야한다고 설쳤던 사내가 어? 저 년 좀 보소? 하는 눈빛으로 말했다.

옹녀가 그 사내를 눈에 불을 켜고 잡아 먹을듯이 노려보았다. 두어 개 밝힌 횃불 속에서 옹녀의 눈이 번들거렸다. 그러자 마주 노려보는 사내의 눈에서 총기가 슬며시 사라지고 있었다. 그것은 사내가 꼬리를 내린다는 뜻이었다. 큰 소리야 치지만 계집이 내뿜는 독기에 이미 기가 죽고 있다는 징조였다.

그걸 모를 계집이 아니었다.

옹녀가 맨발로 토방으로 내려섰다.

"끌어내릴 것이 멋이다요? 내 발로 내려가겄소. 이년얼 쥑인다고라? 어디 쥑일라면 쥑여보씨요. 내가 참말로 죽을 죄럴 지었으면 달게 죽어야제요. 내가 사람얼 쥑인 년이라면 입이 있은들 하소를 허겄소? 어디, 쥑여보씨요. 넘헌테 시키지 말고 이녁의 손으로 쥑여보씨요."

말을 하다보니까 점점 약이 오른 옹녀가 논문서 타령을 하던 사내에게 다가갔다. 사내가 어? 어? 이년이 하면서 뒤로 두어 걸음 물러섰다. 그럴수록 이 쪽에서는 당차게 나가야하는 것이었다. 쥑이랑깨요, 쥑여보랑깨요, 하며 바짝 다가 간 옹녀가 사내의 사추리 밑을 오른 손으로 불끈 움켜 쥐었다. 감자 두 알에 고구마 한 알이 옹녀 년의 손아귀에 잡혔다.

"아, 아이고. 이 년이 사람잡네."

사내가 비명을 내지르며 털썩 주저 앉았다. 그만하면 더는 입을 놀리지 못하리라고 믿은 옹녀가 손을 탈탈 털며 입을 열었다.

"흐따, 양기가 입으로만 올랐는가 아랫녁 물건은 생기다가 말았네. 그런 연장으로 어뜨케 밭을 갈고 논을 갈아 씨를 뿌렸는가 모르겄네. 어뜨케 벌초감언 장만해 놓았소?"

옹녀 년이 마당의 사내들을 둘러보며 싸늘한 웃음을 흘렸다.

"이보시요들, 하늘헌테 물어보고 땅헌테 물어보씨요. 이년이 먼 죄럴 지었는가 물어보란 말씸이요. 이 년이 잘못헌 것이라면 맴에 안 내키는 씨받이 노릇을 허겄다고 이 집 문턱을 넘어 들어 온 것 백이 없소. 어찌어찌 씨 하나 받아 이 집의 손얼 이어주겄다고 헛심얼 쓴 죄 백이 없었소. 그런 이 년이 쥑일 년이면 어디 들고 있는 그 몸뎅이로 칵 때려 쥑여뿌리씨요. 때려 쥑이랑깨요."

옹녀 년이 이 사내 저 사내한테 얼굴을 들이대며 금방이라도 사추리 밑을 잡을듯이 바락바락 소리를 질렀다. 원래 화란 내다보면 점점 더 커지는 법이었다. 처음에는 이판사판 달려들던 옹녀 년이 사내들이 슬며시 수그러들자 점점 기고만장해 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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