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과 민주주의 그리고 교사·공무원의 정치기본권
교육과 민주주의 그리고 교사·공무원의 정치기본권
  • 김정훈
  • 승인 2012.12.17 17: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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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선거가 있을 때마다 교사·공무원의 처지를 생각하면 우울해진다. 가장 기본적인 권리조차도 유예 또는 박탈된 이들이 교사와 공무원이다. 교사·공무원은 정당에 가입할 수도 없고 후원금도 내지 못한다. 정당이나 후보에 대한 지지 또는 반대 의사도 표현할 수 없다. 국민이라면 누구나 누려야 하는 정치기본권이 보장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그저 입 닥치고 ‘표’만 찍으라고 한다. 아직까지도 그것을 당연시한다면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는 매우 불완전한 상태에 있는 것이다.

“공무원의 신분과 정치적 중립성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보장된다.” 헌법 제7조다. 이는 국가와 정권에 대해 교사와 공무원이 정치적 중립을 보장받는 ‘권리’라는 것이지, 정치적 중립의 의무를 부과한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지금까지의 정권들은 이를 자의적으로 해석하여 교사·공무원에게 기계적인 정치적 중립을 요구했다. 정치기본권 박탈을 당연시해 온 것이다. 교사·공무원은 국가공무원법 등의 법률에 의해 오직 국가 기관의 권력에 ‘복종’하도록 강요당하고 헌법에 보장된 국민으로서의 정치기본권은 무시당해 온 것이다.

다른 나라의 사례를 드는 것도 이제는 지겹다. 조희연 교수는 지난 12월 11일 ‘교사·공무원 정치기본권 보장 입법 공청회’에서 ‘교사·공무원의 정치기본권을 제한하는 것은 새누리당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라는 취지의 말을 했다. 현실적으로도 교사·공무원의 정치기본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의 정치적 상상력을 누가 어떻게 제한할 수 있단 말인가. 그리고 상상의 틀 안에 가둬두는 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하기나 한 것인가. 표현의 자유는 민주주의의 기본이다. 그 중에서 정치적 표현의 자유는 핵심이다.

정치적으로 선출된 권력에 대해 어떤 정치적 의사 표현도 허용되지 않는다면, 교사·공무원은 21세기 대한민국에서조차 ‘권력의 시녀’ 노릇을 하거나 그 흉내라도 내라는 것과 같다. 제발 교사·공무원의 정치기본권 보장이 나라를 혼란에 빠트릴 것이라는 과도한 염려는 이제 그만두시라. 한국현대사에 있었던 치욕의 순간들은 정치기본권이 박탈된 교사·공무원들이 정권과 그 우두머리를 향한 ‘맹종’의 역사와 궤를 같이했다. 이 점을 뼛속 깊이 새겨볼 일이다.

투표권 행사는 제한적이지만 청소년의 정당 가입을 허용하는 나라도 많다. 우리나라도 SNS 보급 등으로 청소년의 정치 의식이 높아지고 정치 토론도 활발해지고 있다. 교실 안에서 다양한 삶의 주제와 현안이 토론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 그 모두가 정치적인 표현이 아닌가. 민주주의를 가르치고 배우는 공동체가 학교이기 때문이다. 청소년이 생각하고 실천해야 할 의제가 따로 분리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 민주주의 교육, 교육의 민주화는 실종된다. 이제 미성숙·성숙이라는 모호한 기준으로 정치와 민주주의에 대한 무뇌아를 만들려는 생각부터 버려야 한다.

학교 밖 청소년들은 아직 미숙하기 때문에 정치인에게 배워서는 안 되겠지· 대학교 1학년생은 수능 이후 갑자기 정치적 성숙이 이루어져 정치기본권이 보장된 교수의 강의를 들어도 되는 것인가. 정치기본권이 없는 교사가 정치 교과, 사회 교과를 가르치는 건 어떻게 생각하는가. 너무 정치적이지 않은가.

박근혜 대선 후보는 TV토론에서 “이념 교육, 시국선언, 민노당 불법 가입 등으로 전교조가 학교현장을 혼란에 빠뜨리고 있다”고 말했다. 이념이 뭔지나 알고 한 말일까. 건학이념을 내세운 사립학교의 이념 교육은 어떤가. 시국선언. 우리 사회가 망가지든 말든 교과서만 펴들고 있으란 말인가. 저희끼리 법을 몰래 바꾸고는 “너 걸렸다” 하고 잡아들이는 짓이 법치주의인가. 사실을 왜곡하는 흑색선전으로 합법 전교조를 배제하려고 했다. 결국, 민주주의의 문제다. 전교조는 명예를 훼손당했다. 그러나 교육민주화와 민주주의 교육을 향한 전교조의 발걸음은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우리 아이들과 선생님들과 학부모들의 입이 자유롭게 열리는 학교. 그것은 교사·공무원의 정치기본권 보장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김정훈<전교조 전북지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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