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루지기 <429>극락에 갈둥말둥허요
가루지기 <429>극락에 갈둥말둥허요
  • 최정주 글,고현정 그림
  • 승인 2012.12.16 16: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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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대물의 수난 <79>

"아요, 나도. 총각 기운이 천하장사인 줄 나도 아요. 허나 조심허면 안 되겄소? 내가 주막의 뒷방 하나를 내 주리다. 어차피 주막인디, 총각이 내 집에 있다고 숭 볼 사람도 없을 것이요. 음전네만 해도 그렇소. 총각이 찾아댕기면 언제 들통이 나도 날 것이요. 허지만, 총각이 내 집 뒷방에 있음서 서로간에 생각날 때마다 음전네가 들락이면 의심헐 사람도 없을 것이요. 정사령도 지 마누라가 내 집을 지 집처럼 들락였응깨, 이상허게 여기지도 않을 것이고."

주모의 말에 순간 강쇠 놈의 머리 속으로 썩 괜찮은 제안이구나, 하는 생각이 스쳐갔다. 주모가 원할 때면 기운을 다 쓰지 않고 시늉으로만 품어주고, 진짜 아랫녁 재미는 음전네를 불러 보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었다.

그렇다고 처음부터 좋습니다, 하고 나갈 수는 없었다. 나중에라도 혹시 뒷소리 못하게 단단히 다짐을 받아둘 필요가 있었다.

"생각해 봅시다."

강쇠 놈이 내키지 않는다는 듯이 시큰둥히 대꾸했다.

"생각허고 자시고 헐 것이 멋이다요? 내가 입혀주고 멕여주고 잠재워줌서, 가끔은 계집 재미꺼정 보게 해주겄다는디, 뒤로 뺄 것이 멋이다요? 내 말얼 못 믿어서 그요?"

주모가 눈을 똑바로 뜨고 올려다 보았다. 강쇠가 말없이 주모의 눈을 내려다 보았다.

"음전네를 불러다 준댔다가 안 불러주까 싶어서 그요? 아니면, 음전네허고 잠자리를 헌다고 투기라도 허까싶어서 그요? 정사령헌테 일러바칠까 싶어서 그요?"

주모가 핏발 선 눈으로 노려볼 때였다. 강쇠 놈의 귀에 사립문이 열리는 삐그덕 소리가 어렴풋이 들렸다. 그러나 그 뿐, 다른 기척은 없었다. 바람소리였는가? 강쇠 놈이 고개를 갸우뚱하는데, 주모도 이상한 낌새를 느꼈는지 서두르고 나왔다.

"반분은 풀렷소만, 나머지도 마저 풀어야제요. 내가 시방 극락에 갈둥말둥허요. 헌깨 팍팍 해뿌리씨요."

주모가 엉덩이를 들어 좌우로 돌리며 말했다.

"알겄소. 어째 등골이 서늘헌 것이 영 껄적지근허요."

강쇠 놈이 대꾸하며 힘차게, 그러나 계집의 허리가 절단나지 않도록 조심하며 방아깨비 방아를 찧어댔다.

"흐흐흑, 죽겄소. 내가 죽겄소."

주모가 강쇠 놈의 등짝을 손톱으로 할퀴며 입술을 깨물며 으으윽 신음을 목구멍으로 삼킬 때였다. 방문이 벌컥 열리면서 음전네가 오른 손에 날이 시퍼런 낫을 들고 살기등등한 눈빛으로 들어섰다.

"내가 이럴 줄 알았제. 대명천지 밝은 대낮에 이것이 먼 짓이디야?"

"아, 아짐씨."

강쇠 놈이 입을 쩍 벌리고 올려다 보았다.

"이 짐승만도 못헌 것덜, 죽어라, 죽어."

음전네가 낫을 치켜 든 채 고함을 지르며 달려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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