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루지기<428>나허고 살기가 싫소?
가루지기<428>나허고 살기가 싫소?
  • 최정주 글,고현정 그림
  • 승인 2012.12.16 16: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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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대물의 수난 <78>

"알겄소. 나넌 아짐씨가 세게 허자는 줄 알고 그랬소. 아니, 사실은 이 집 아짐씨가 오까싶어서 맴이 급했는갑소."

"오면 대수다요? 총각이 음전네의 사내도 아니고, 제 년도 떳떳허지 않기는 마찬가진디, 큰 소리는 못 칠 것이요."

"그래도 사람이 체면이 있는 것인디."

"체면이 밥 믹여주요? 체면이 극락구경 시켜준답디까? 막상 음전네가 이 꼴얼 본다고해도 난 무설 것이 없소. 나야 운봉 인월 사람들이 다 아는 잡년인디, 음전네야 말로 서방 있는 여자가 외간 남자와 눈 맞추고 배맞추고, 맞출 것 다 맞추었응깨, 입이 열이라도 헐 말이 없을 것이요."

"흐긴, 아짐씨 말이 맞소."

강쇠 놈이 고개까지 끄덕이며 수긍했다. 잡놈은 잡놈답게 살면 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주모한테 극락 구경을 시켜주는 것이 제 놈이 할 일이었다.

"내가 참 속창아리가 없는 년이요. 아침에 잠을 깰 때만해도 허리가 뻑적지근허니, 만사가 귀찮앴는디, 아까막시 음전네럴 본깨, 어기적거리며 방에서 나오는 음전네럴 본깨, 내 눈에 불이 확 붙음서 아픈 허리가 싹 낫습디다. 음전네허고 총각허고 밤내내 분탕질얼 쳤을 것을 생각헌깨, 충각도 밉고, 음전네도 찢어 쥑이고 싶도록 밉습디다."

"별 소리를 다허요이. 쪼개 전에 안 그랬소. 이놈언, 이 변강쇠 놈언 음전이 아짐씨 것도 아니고, 주모 아짐씨 것도 아니라고 했잖소. 그런디, 새삼 쥑이고 말 것이 멋이다요?"

"그것이 여자맴이요. 넘의 서방이 내 서방보다 잘 났다 싶으면 약이 올라서 잠을 못 자는 것이 여자 맴이요. 그래도 하룻밤 만리장성을 싼 총각인디, 주모 노릇 스무해 만에 첨으로 만낸 쓸만헌 사낸디, 그 사내가 딴 계집얼 품었다고 생각헌깨, 사지육신이 다 떨립디다. 인자, 총각얼 아무데도 안 보낼라요."

주모가 끙끙 앓으면서도 할 말은 다 해야겠다는 듯 입을 나불댔다.

"안 보내면 어뜨케 헐 것인디요?"

강쇠 놈이 거시기 놈을 서너차례 울끈불끈 움죽거리며 물었다.

"좋소. 미치고 환장허게 좋소. 그렇게만 해주씨요. 총각, 나허고 삽시다. 내가 밥도 믹여주고 옷도 입혀주고, 잠도 재와줄라요. 어채피 나 혼자 총각얼 감당허지넌 못 헐 것인깨, 가끔은 다른 계집도 이불 속에 넣어줄 것인깨, 나허고 삽시다."

주모의 말에 내가 이럴 줄 알았당깨, 하고 속으로 생각하며 강쇠 놈이 천장을 향해 흐 웃었다. 주막의 주모들이건, 여염의 아낙들이건, 사대부의 청상들아건, 한번만 아랫녁을 맞추었다하면 한결같이 함께 살자고 덤비는 것이었다.

"왜요? 싫소? 나허고 살기가 싫소?"

강쇠 놈의 대꾸가 없자 주모가 아랫녁을 서너차례 움죽거리다가 물었다.

"싫은 것은 아니제만, 사흘만 살고 나면 아짐씨가 날 내쫓을 것이요. 아니면 허리병신이 되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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