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루지기 <426>자칫하면 줄초상이
가루지기 <426>자칫하면 줄초상이
  • 최정주 글,고현정 그림
  • 승인 2012.12.13 17: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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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대물의 수난 <76>

"흐따, 정사령헌테 안 이를 것인깨, 눈 좀 내리까씨요."

"먼 일로 왔냐고 안 물었소?"

"아, 글씨, 걱정허지 말래도 그러요이. 음전네의 걸음걸이가 수상허고, 내 집 일얼 험서도 자꼬만 딴 생각얼 허길래 집에다 먼 꿀단지럴 숨겨놓고 왔는가 확인허로 왔소."

"어쩌다 본깨, 일이 여그꺼정 오고 말았소."

"아요,나도. 남녀간의 정분이라는 것이 마른 하늘에 날벼락겉은 것이라고 안 했소? 음전네헌테 총각이 존 일 한번 했소."

"존 일이라니요?"

"그 년이 평생얼 사내 재미도 모르고 살뻔 안 했소? 총각이 불쌍헌 여자헌테 살보시 한번 잘 헌 것이요. 그건 그렇고, 멀쩡헌 넘의 마누라의 밑구녕에 바람얼 잔뜩 넣어놨는디, 이 일얼 어쩔 것이요?"

주모의 눈빛이 순간 먹이를 노리는 살쾡이의 눈으로 바뀌었다. 수없이 많은 계집들을 만났지만, 한 순간에 눈빛을 그리 표독스레 바꾸는 계집은 또 처음이었다.

"살보시 한번 잘 했으면 됐제, 멀 또 어쩐다요?"

강쇠 놈이 시치미를 뗐다.

"음전네가 놓아줄 것 같소? 글고 정사령이 가만히 있을 것 같소.

총각도 알겄제만, 정사령의 성깔이 개차반이요. 지놈 기분이 나쁘면 지 목심꺼정도 내떤짐서 죽이겄다고 뎀빌 것이요. 아까막시 함양 손님이 내 주막에 들렸는디, 잡놈 하나가 운봉 주막의 주모년얼 허리병신얼 맹글아놓고 도망쳤다는 소문이 자자허다고 그럽디다."

"펄새 소문이 퍼졌다요?"

"발 없이도 천리를 가는 것이 소문이라고 했소. 특히나 정사령이 눈에 불을 켜고 찾는다고 그럽디다."

"정사령이 나럴 찾아요? 운봉 주막의 주모 말로는 보름이건 한 달이건 모른체끼 있다가 이 쪽이 잊을만허면 찾아와서 술 내놔라, 밥 내놔라, 뻔뻔시레 군다고 글던디."

"그것이사 총각이 주막에 잘 있을 때 말이제, 주모를 그 지경을 맹글아놓고 도망을 쳤다는디, 가만히 있겄소? 총각얼 딴 데로 빼돌린 줄 알고 주모를 닥달허다가 혹시 묵잘 것이나 없는가하여 눈에 쌍심지를 켜고 뎀빌 것이요. 총각언 인자 벌집얼 건드린 것이요."

말끝에 주모가 강쇠 놈의 눈치를 살폈다. 그런데 눈이 번들거렸다. 아랫녁을 맞추었던, 그것도 두 번이나 극락구경을 시켜주었던 사내와 단 둘이 있다, 싶으니까 엉뚱한 욕심이 생기는 것이 틀림없었다.

계집의 그런 속내를 눈치챘으면서도 거시기 놈은 잠잠했다. 제 주인이 눈 앞의 계집을 썩 내켜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었다.

"내가 어찌했으면 좋겄소? 정사령이 찾아오면 참으로 큰 일이 아니요?"

"큰 일이지요. 자칫하면 줄초상이 날 일이지요."

주모가 시큰둥한 낯빛으로 대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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