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루지기 <425>마루에 털썩 엉덩이를
가루지기 <425>마루에 털썩 엉덩이를
  • 최정주 글,고현정 그림
  • 승인 2012.12.12 15:2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8. 대물의 수난 <75>

'혹시 엄니가 날더러 도망가라고 현몽해주신 것언 아닐랑가? 운봉 주막의 주모년얼 허리병신을 맹글아놓고 도망친 천하의 잡놈을 잡겄다고 운봉 관아의 사령들이 출동헌 것언 아닐랑가?'

강쇠 놈이 그런 생각을 하면서 고개를 갸웃거릴 때였다. 사립문이 열리는 찌그덕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정사령의 마누라가 돌아오는가 싶어 눈을 문구멍에 가져다 댔다.

그러나 사립을 열고 들어서는 것은 삼거리 주막의 주모였다.

'저 계집이 주인도 없는 집에 먼 일이까?'

더구나 정사령의 마누라를 제 주막에 불러다가 음식장만을 시키고 있잖은가? 심부름을 시킬 일이 있으면 주인을 보내지, 주모가 올 일은 없을 것이었다.

주모는 망설임도 없이 마당을 가로질러 와 부억문도 열어보고, 집안 곳곳을 살피는 기척이더니, 마루에 털썩 엉덩이를 내려놓았다.

강쇠 놈이 숨을 죽이다가 침을 꿀꺽 삼키는데, 주모가 돌아보며 빙긋 웃음을 흘리다가 말했다.

"이보씨요, 총각. 내가 안에 있는 것을 다 알고 왔응깨 문 쪼깨만 열어보씨요."

순간 강쇠 놈의 가슴이 철렁 내려 앉았다. 말하는 투가 방안에 제 놈이 있는 것을 훤히 알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호락호락 문을 열 수는 없었다. 여우같은 계집이 무슨 수작을 부리고 있는지도 몰랐다. 어쩌면 음전네와 무슨 얘긴가를 나누다가 작은 꼬투리라도 잡고 혹시나 싶어 확인을 왔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강쇠 놈이 가만히 있는데, 주모가 다시 입을 열었다.

"다 알고 왔당깨 그요이. 음전네가 미주알고주알 다 털어놨소. 긍깨, 문 쪼깨만 열어보씨요."

그래도 강쇠 놈이 못 들은 체, 안에 아무도 없는 체, 입을 닫고 있자 주모가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내가 잘못 알았나, 하고 중얼거리면서 문을 열었다. 순간 벽 쪽에 잔뜩 붙어 몸을 숨기고 있던 강쇠 놈이 주모의 어깨죽지를 붙잡고 안으로 휙 잡아 끌었다.

"어메, 이것이 먼 짓이디야?"

주모가 비명을 내지르며 앞으로 덜퍽 넘어졌다.

"웬일이요? 여그넌."

강쇠 놈이 자칫 엉뚱한 수작을 부리면 목이라도 조르겠다는 투로 물었다.

"내가 그럴 줄 알았당깨. 눈 뺄내기럴 해도 총각이 여그 있을 줄 알았당깨. 귀신언 속여도 나넌 못 속인당깨."

주모가 몸을 일으켜 앉으며 눈을 치켜떴다. 강쇠 놈이 눈을 부릎뜨고 주모를 노려보았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