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루지기 <424>밤에는 마누라의 밭을 갈고
가루지기 <424>밤에는 마누라의 밭을 갈고
  • 최정주 글,고현정 그림
  • 승인 2012.12.12 15:2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8. 대물의 수난 <74>

닳고 닳은 주막집 계집이 아니라, 음전네같은 새 계집을 데리고 어디 멀리 깊은 산 속에 숨어 논 갈고 밭 매며 살고 싶었다. 낮으로는 들 일을 하고 밤으로는 또 마누라의 밭을 갈아 씨를 뿌려 자식이라는 열매를 거두어 오손도손 살고 싶었다.

정가 놈이 비록 사령이라고는 해도 지리산 깊숙한 곳이나 팔령재를 넘어 경상도 땅 낯 선 곳에 숨어 산다면 찾아낸다는 보장도 없었다. 더군다나 제 마누라의 밭도 제대로 못 가는 놈이 그런 마누라를 찾겠다고 기를 쓰고 덤비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나도 아짐씨허고 그렇게 살고 싶소. 아짐씨가 좋은 여자라는 생각도 들고, 궁합도 참 잘 맞는 것 같소."

"궁합도 잘 맞아라우? 우리넌 아직 생년월일시도 모르는디."

"그런 궁합 말고 속궁합 말이요. 남녀사이라는 것이 사주팔자 궁합도 요긴허지만, 살방애 찧는 속궁합이야말로 부부간에 알콩달콩 살아가는 재미가 아니겄소. 댕겨 오씨요. 댕겨와서 얘기해 봅시다."

"알겄구만요. 쪼깨만 지달리씨요. 아무리 바빠도 이녁 진지상은 채려디리고 가야제요."

"흐흐, 글고 본깨 내가 안즉 아침도 안 묵었소이. 얼른 챙겨오씨요. 뱃가죽이 등가죽허고 합궁허자고 난리요."

강쇠 놈의 너스레에 음전네가 얌전하게 일어나 방을 나갔다.

그리고 언제 준비해 놓았던지 구운 간조기 한 마리까지 얹힌 밥상을 들여왔다.

그런데 밥이 두 그릇이었다.

"한 그럭언 점심 때 잡수씨요. 아무래도 나넌 해가 넘어가야 올 것이요. 누가 찾아오지도 않는 집이오만, 누가 와서 찾드래도 암소리 말고 방안에만 있으씨요."

그런 말을 남기고 음전네가 방을 나간 다음이었다. 강쇠 놈이 밥상을 끌어당겨 단숨에 먹어 치우고 트림까지 끄윽하며 이불 속에 몸을 뉘었다.

다시 잠이라는 놈이 쏟아져 내렸다. 그러나 편안한 잠은 되지 못했다. 육모방망이에 창을 든 사령놈들한테 쫓기다가 벼랑으로 떨어지면서 오줌을 질금거리는 꿈을 꾸었다. 어린 시절에는 그런 꿈을 꾸고 나면 아랫도리가 축축히 젖어있었는데, 다행이 꿈에서 깨어나도 바지 자락은 멀쩡했다.

'흐참, 별 요상시런 꿈얼 다 꾸었구만이. 꼭 얼라덜 오줌 싸는 꿈얼 꾸다니.'

입맛을 쩝 다시면서 중얼거리다보니, 창끝을 겨누고 쫓아오던 사령놈들의 모습이 스쳐갔다. 사령 들 속에 정사령의 얼굴은 없었던 것 같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