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는 일자리야!
문제는 일자리야!
  • 김영호
  • 승인 2012.12.06 15: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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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교수 생활을 시작한 지 30여년이라는 세월이 흐르고, 나이로는 환갑이 다 된 지금까지도 잘 적응이 되지 않는 연례 행사가 두 가지가 있는데, ‘스승의 날’과 사은회 행사이다. 평소에는 학생들과 스스럼없이 잘 어울려 사담도 나누고, 밥도 먹고, 술도 마시고 하는 편인데 유독 이 행사에만 임하면 어색하고, 인사말도 더듬거리고, 앉아서 대접받는 것이 영 몸에 맞지 않는 양복이라도 걸친 듯 불편하다.

교수이기 이전에 교육자로서의 자질이 부족하다고 스스로 느끼는 자격지심 탓이겠지만 꼭 그것만도 아닌 것이 현실적으로도 그런 대접을 받을 자격이 있는지를 되돌아보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가장 큰 요인은 좀처럼 나아질 전망이 보이지 않는 청년 실업률, 보다 정확하게 말한다면 대졸자 실업률 때문이다.

4년 동안 비싼 등록금 내고 배운 학생들이나 부모님들의 입장에서야 더 말할 것도 없겠지만 가르치는 입장에 서있는 사람도 답답하기는 마찬가지인데, 그래도 사은회라고 스승의 은혜를 기리는 학생들의 정성이야 고맙기 그지없지만 그냥 앉아서 넙죽 받기에는 영 염치가 없고 뒤통수가 따가운 일이다.

대학 교육이 꼭 사회 진출, 즉 취업만을 위한 직업 교육은 아니라고 하지만, 그래도 배운 것을 제대로 써 먹을 수 있어야 배우는 사람이나 가르치는 사람이나 의욕이 날텐데, 현실은 전국적으로 해당 연도 졸업생의 절반 정도만이 취업을 하고 그 중에서도 자신이 전공한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은 또 그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형편이라고 하니 대학 교육 무용론이 나온다고 해도 교수로서 고개를 쳐들어 대꾸하기가 부끄러울 지경이다.

그러나 이 문제는 누가 부끄러워하고, 미안해한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전혀 아니라는 데에 그 심각성이 있는데, 실제로 현 정부에서는 통계상의 수치로 취업률을 높이는 실적에만 급급하다 보니 통계 수치의 실업률 감소가 전혀 내 문제와는 상관없는 일처럼 되어버렸으며, 여야 대선 주자들의 공약을 들여다봐도 일자리를 창출하겠다고 말은 하지만 어떻게 하겠다는, 즉 how가 빠져있어 구체적이고 실현 가능한 공약은 거의 눈에 띄지 않으니 문제의 심각성을 모르는 것인지, 알기는 하지만 뾰족한 처방이 없으니 대충 넘어가는 것인지 모를 일이다.

따지고 들면 청년 실업만이 문제는 아니다. 외환위기 등 몇 차례의 경제 위기 와중에 대량으로 쏟아져 나온 실직자 및 조기 퇴직자들 그리고 소위 베이비 붐 세대에 속하는 연령층의 퇴직이 향후 몇 년 이내에 집중될 것으로 예측되고 있어 실업 문제, 아니 다르게 표현한다면 일자리 문제는 모든 연령 계층의 문제이자 곧 국민 모두의 문제가 되어버렸다.

옛날에는 환갑이면 완전히 노인 대접을 받던 시절도 있었지만 요즘에는 나이 60 먹은 사람보고 노인이라고 했다가는 멱살 잡고 싸우자고 할만큼 건강이나 의욕이 펄펄 넘치는 분들이 대부분인데 그동안 일 많이 하셨으니 이제 뒷전으로 물러나 쉬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일뿐더러 노후 대책도 마땅치 않으니 장년층의 일자리 문제도 보통 일이 아니다. 만약 이들의 정년을 연장하면 청년층의 취업 자리가 줄어들테니 윗돌 빼다가 아랫돌 괴는 형태의 일자리 대책이요, 심하게 표현하면 부모 세대와 자녀 세대의 갈등을 부추키는 대책이라고도 할 수 있다.

더욱이 고도 성장은 옛말이 되어버렸고, 우리 주변을 둘러싼 주요 국가들의 경제 상황도 별로 호전될 기미를 보이지 않으니 경제가 좋아져 일자리가 더 생길 것이라는 기대는 접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그렇다면 주어진 현실 속에서 어떻게 일자리를 늘려 나갈 것인지에 대해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야 할텐데, 경제에 대해서는 문외한인 비전문가가 섣불리 훈수를 두는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발상을 전환하여 대처한다면 못할 것도 없을 것 같다.

현재 유력 대선 후보들이 서로 경쟁하듯 내놓는 공약 중의 핵심은 경제 민주화와 복지 확대인데, 방법론에서 차이는 있지만 누가 되든 큰 틀에서 이 기조는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경제 민주화나 복지 확대라는 문제를 일자리 창출 또는 일자리 나누기로 연결시킬 수 있는 고리만 찾으면 된다. ‘65세 정년 연장’과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그리고 ‘청년 고용 할당제’는 상충되는 공약일 수도 있지만 운용하기에 따라서는 상생의 묘를 찾을 수도 있을 것 같고, ‘무상 의료 지원’과 ‘반값 등록금’도 그냥 퍼주기, 나눠주기가 아니라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 수 있는 기회로 활용하도록 지혜를 모아야 한다. 좀 너무 나아가는 발상인지는 모르겠으나 남북 문제도 하기에 따라서는 일자리 만들기로 풀어나갈 수 있겠다는 생각까지 해본다.

내가 만약 대선 후보라면 클린턴이 아버지 부시의 재선을 저지하고 대통령에 당선될 때 사용했던 “문제는 경제야! 바보야”라는 구호를 우리 식으로 “문제는 일자리야!”로 바꿔, ‘일자리가 곧 복지’요 ‘누구나 일하는 것이 곧 경제 민주화’라고 복잡한 공약을 단순화시키고, 물론 당선이 된 후에는 이 공약을 지키기 위해 모든 정책을 집중시킨다면 ‘양극화 해소’ ‘중산층을 두 배로’와 같은 공약은 절로 실현되지 않을까 하는 꿈을 그려본다.

내일이 사은회인데 벌써부터 걱정이다. 무슨 말을 해주어야 하지?

< 김 영 호 (우석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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