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루지기 <403>눈 맞춘 계집이 있잖은가
가루지기 <403>눈 맞춘 계집이 있잖은가
  • 최정주 글,고현정 그림
  • 승인 2012.11.27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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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대물의 수난 <53>

강쇠 놈이 혀를 끌끌차며 구시렁거리자 젊은 계집이 눈이 찢어져라 흘겨보았다. 흐따, 씨부랄 년겉으니라고. 아랫녁만 밝히는 줄 알았는디, 성깔도 더런갑네, 하고 중얼거리며 밥숟갈을 드는데 주모가 전대와 금반지를 가지고 왔다.

"에쏘. 여보소. 정사령 몫은 아까막시 그 예편네가 가져갔고, 남거지 다요. 얼릉 묵고 얼릉가씨요. 총각 얼굴 보고 있으면 가심에서 울떡증이 나서 못 참겄소."

주모가 피같은 내 돈 하는 눈빛으로 말했다.

"미안시럽소. 아짐씨가 나헌테 영금만 안 뵈었어도 내가 아짐씨네 돈꺼정 가져가지는 안 했을 것이요. 오는 정이 있어야 가는 정도 있드라고, 아짐씨들이 나헌테 모진 꼴얼 보여주었는디, 나라고 부처님 노릇만 헐 수는 없지 않소."

금반지와 돈 전대를 챙기며 강쇠 놈이 두 계집을 향해 싱긋 웃었다. 약속이라도 한듯이 두 계집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어차피 처음부터 인월 삼거리 주막에서 묵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가다가 주막을 찾아도 될 것이고, 주막이 없으면 부자집 사랑을 찾아간다고 해도 하루밤은 재워줄 것이었다.

그러나 저녁에는 사랑방 신세를 지지는 않을 것이었다, 이미 눈 맞추어 놓은 계집이 있잖은가? 한 눈에 잡놈을 알아보고 침을 삼킬 계집이라면 어쩌면 뒷물까지 마치고 학수고대 기다리고 있을지도 몰랐다. 그런 생각을 하자 강쇠 놈은 마음이 바빠졌다. 어두워지기 전에 정사령의 집이라도 알아두어야 늦은 밤에 집을 찾느라 부산을 떨지 않아도 될 것이었다.

"허면 나넌 가볼라요."

밥을 다 먹고 탁배기까지 한 병 마신 강쇠 놈이 미련없이 몸을 일으켰다.

"참말로 갈라요?"

주모가 물었다.

"아, 가람서요? 내 비록 밑천 하나로 묵고 사는 놈이오만, 눈치밥언 안 묵고 살았소."

강쇠 놈이 밥상 위에 엽전 세 닢을 떨구어 놓고 방을 나왔다. 두 계집이 저 잡놈이 참말로 가네, 하는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흥얼흥얼 콧노래를 부르며 주막을 나온 강쇠 놈이 삼거리에서 잠시 걸음을 멈추었다. 해뜨는 쪽으로 가면 함양이고 오른쪽으로 가면 산내였으며, 뒤로 돌아서면 운봉가는 길이었다. 팔량재를 넘자고해도 어중간한 길이었고, 산내 쪽은 초행이었다.

그러나 괜히 그래보는 것일 뿐, 놈의 머리 속에는 이미 갈곳이 정해져 있었다. 정사령놈의 집을 찾아가는 것이었다. 비록 놈의 집이 어디인가는 잘 몰라도 며칠 전 놈의 아낙이 빨래를 하던 곳까지 가면 못 찾을 것도 없었다.

'찾다가 못 찾으면 머슴들의 사랑방을 찾아가면 될 것인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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