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루지기 <398>병신이 되어라우
가루지기 <398>병신이 되어라우
  • 최정주 글,고현정 그림
  • 승인 2012.11.25 15: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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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대물의 수난 <48>

"뒷방으로 들면 되제요? 내가 점심도 안 묵고 삼십리 길얼 걸어왔더니, 뱃가죽이 등가죽에 붙었소. 우선 밥부터 한 상 디려주씨요."

"알겄소. 들어가씨요."

주모가 마지못한 듯 대꾸했고, 방 안에서 젊은 계집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성님, 오널언 손님얼 안 받기로 안 했소?"

"날도 저물었는디, 기왕 온 손님얼 어찌 내쫓는당가? 방도 비었는디. 밥상이나 챙기드라고이. 암튼지 드씨요."

주모가 젊은 계집한테 말하고 강쇠 놈을 따라왔다.

'흐, 저녁에는 아까 그 계집을 품고 자야제. 허리가 호리낭창헌 것이 요분질언 잘 허겄드만.'

생각만으로도 강쇠 놈의 거시기 요동을 쳤다. 가만 있그라, 이놈아. 내가 언제 니눔얼 실망시킨 일이 있더냐? 주모가 따라오건 말건 거시기 놈을 주먹으로 한 대 툭 치며 강쇠 놈이 싱긋 웃었다.

"미안시럽게 됐소. 내 뜻언 그것이 아니었는디, 정사령이 온 바람에 일이 그렇게 되어뿌렀소."

뒷방에 자리를 잡자 주모가 문 밖에서 사과부터 했다. 그러나 그것이 발뺌이라는 것을 모를 강쇠 놈이 아니었다.

"사람얼 죽여놓고 잘못했다고만 허면 다요? 아짐씨가 책임을 지씨요. 정사령헌테 끌려가서 이몸언 병신이 다되어 뿌렀소."

"병신이 되어라우?"

주모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 내 꼴을 보고도 모르겄소? 정사령의 발길에 채여 내 탱자 두 쪽이 박살이 나뿌렀소."

"탱자가 박살이 나요? 하이고, 이 일얼 어쩐디야?"

"어쩌기넌 멀 어쩐다요? 아짐씨가 책임얼 지면 되제요. 흐따, 정사령 그 씨부랄 놈이 발길 한번 매웁디다이. 딱 한번 채였는디, 정통으로 맞았는지 어쨌는지 덜프덕 깨져뿌렀소.그건 그렇고 내 돈보따리허고 금반지허고 밭문서나 가져다 주씨요."

강쇠 놈이 잡아먹을 듯이 주모를 노려보며 말했다.

"돈언 먼 돈이고 밭문서는 또 먼 밭문서다요?"

주모가 강쇠 놈을 마주보며 발뺌을 했다.

"아,. 내 돈허고, 금반지허고 내 밭문서 말이요. 설마 엉뚱헌 소리럴 허는 것언 아니제요?

만약에 그랬다가는 내가 가만히 안 있을라요. 기왕에 병신도 되었고 헌깨, 내가 무설 것이 멋이다요? 이놈의 집구석에 불을 확 질러뿌릴 것인깨, 알아서 허씨요."

강쇠 놈이 금방이라도 불을 지를듯이 설치자 주모가 뽀르르 방으로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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